2014 법무사 5월호
인문학의창 에 오르고 난 후 홍국영(洪國榮)의 세도정치가 시작 되면서 반대파들이 척결되었는데, 마지막으로 겨냥 한 사람이 연암이었다. 왜냐하면 연암의 ‘문장이 갖 고 있는 힘’ 때문이었다. 1778년 이를 안 연암의 친 구들은 그를 개성 근처 ‘연암협(燕巖峽)’으로 도피시 킨다. 2년 후 홍국영이 실각하자 1780년 귀환했으 나 그 사이 백탑파는 해체되었고, 우울한 심정으로 40대 중반을 통과하고 있던 연암에게 중원대륙을 유람할 기회가 찾아왔다. 드디어 연암과 「열하일기」 라는 운명적인 조우(遭遇)가 시작되었다. ▶세계최고의여행기 『열하일기』는 문체가 갖고 있는 잠재력, 실천정신 이 최대한 발휘한 글쓰기이며 문체의 대향연의 시작 이다. 또한 그 유명한 이용후생(利用厚生)의 문명론 이 들어있으며, 44세에 이 여행에 합류한 연암 일생 에 변곡점이 된다. 건륭제와 열하와 연암, 이 세 조합이 마주쳐서 산 출된 텍스트가 『열하일기』다. 열하는 중국황제들이 천하를 돌다가 여름을 맞으면 행궁으로 살았던 곳으 로, 동북방의 요새인 고북구장성(古北口長城)을 넘 어가야 한다. 그곳은 위구르, 신장, 티베트, 몽골 등 오랑캐 중 의 오랑캐가 발호하던 곳으로, 처음에는 오랑캐들을 위협하고 진압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행궁을 만 들었으나, 그 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 황제의 피서지 로 유명해지게 된 것이다. ▶지성이살아움직이다. 북경까지의 길은 너무나 험했다. 폭우와 폭염을 뚫고 강을 건너며 한 달 이상 행군을 해가며 도착했 더니 황제가 조선사신단을 열하로 불러들인다. 나흘 내내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대장정을 하는데 그 여정 이 험난하다. 고복구장성은 만리장성 중 가장 험난 한 장성인데 그곳을 야삼경(夜三更)에 통과하다 보 니 너무 감회가 복받쳐, 낮에 먹던 술에 먹을 갈아서 글을 남긴다. 바로 연암의 후손 박영철이 조선에서 한문으로 만 들어진 5,000년 동안 최고의 문장이라고 칭송한 「야 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이다. 마지막 관문을 지 나고 나니 거대한 강이 기다리고 있는데, 꼬불꼬불 한 그 강을 아홉 번 들락날락하면서 거의 생사의 경 계까지 간다. 여기서 허탈을 깨달아 「일야구도하기 (一夜九渡河記)」를 남긴다. 연암은 어떤 상황에서도 글을 썼으니 놀라운 일이 다. 6개월 동안의 대장정 기간 중 아픈 일이 없었으 니 이 가공할 체력이 연암의 지성을 만든 건지, 연암 의 지성이 이 힘을 만든 건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유머와역설 『열하일기』의 핵심 키워드는 유머와 역설이다. 고 전은 엄숙한 것이 아니다. 동양철학에는 비극은 절 대로 진리일 수 없다고 본다. 동양철학의 스승들. 공자의 모습, 부처의 얼굴, 전혀 비극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노자의 모습, 그게 동양의 도다. 요동벌판에서 열흘을 가도 산이 보이지 않자, 큰 충격을 받은 연암은 “호곡장(好哭場)이로구나” 라고 외쳤다. “아, 참 좋은 울음 터로구나”라는 의미이다. 희노애락의 감정 중에서 슬픔만이 울음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고 모든 감정이 지극(至極)하면 눈물이 나온다. 존재가 느끼는 경이로움과 환희를 동시적으 로 표현한 게 통곡이며 환희를 울음으로 표현했으니 역설이다. 이처럼 유머와 역설은 함께 간다. 유머는 기존의 『 』 2014년 5월호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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