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5월호

하 철 우 ■ 법무사(대구경북회)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 +)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A단조 D.821」 “ 나이들수록왜이렇게 쓴맛이좋아질까요… ?” 음악과인생 우울증을 앓던 슈베르트의 단조 소나타 경주 배낭여행을 떠난 것은 삼십대 초반의 어느 5 월이었다. 그 무렵 난 이런저런 이유로 무척 힘들었 었다. 경주라는 도시에는 수많은 귀신들이 살고 있 을 것 같았다. 거대한 크기의 무덤들, 다양한 사연 을 간직한 유적들이 그 도시가 수많은 귀신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나는 이런 점을 경주의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했 다. 1주일 동안 철저히 혼자서 경주를 샅샅이 발로 걸으며 내 안의 우울을 떨쳐 내리라 계획했었는데, 여행 둘째 날 밤 문무대왕릉이 위치한 바닷가에서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리란 건 상상조차 할 수 없 던 일이었다. 문무왕은 ‘죽어 동해의 용이 되어 적의 침입을 막 겠다’며 죽은 후 화장을 해서 뼈를 동해에 뿌리고 장 례 절차는 검소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들인 신문왕은 그 유언을 따라 동해에 있는 바위에 유골 을 뿌렸다고 하는데, 나는 그 바위가 보이는 바닷가 에서 그날 밤 소주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민박집을 잡아놓았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닌 탓에 돌같이 무거운 몸이었음에도 오히려 정신은 또렷하 여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그날 밤, 거의 1천억 개의 별이 은하수의 원을 그 리며 회전하고 있었으며 나는 그 별 아래에서 어쩐 지 조금 고독했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슈베 르트(Franz Peter Schubert)의 아르페지오네 소나 타 A단조 D.821(Arpeggione Sonata in A minor, D.821)가 흘렀다. 소주 한 병을 거의 다 비울 무렵 그녀가 나타났다. 20대 후반 쯤으로 보였다. “술 한 잔 주실 수 있나요?” 이태리에서 미술을 배우고 있었다는 그녀의 목소 리는 바람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소주 두 병과 오 징어 한 마리를 더 사가지고 와서 그녀와 대작을 시 작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갈대다. 서로 서로가 서로의 몸을 한 데 묶지 않고서는 우리들 중 누구도 온전히 서 있을 수 없다. 그녀는 유학 중 이태리 남자로부터 배신을 당했 던 것이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고 폐선 처럼 쓸쓸한 세월과 치유될 수 없을 것 같은 상처들 을 견딜 수 없어 한국으로 들어와 여행길에 나섰던 것이다. 처음 만난 나에게 그녀는 이런 이야기들을 주저리주저리 꺼내며 연거푸 술잔을 기울였다. 술을 마시다 말고 그녀는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 며 훌쩍거렸는데 나는 별달리 위로할 말이 없어 밤 바다를 바라보며 소주를 들이킬 뿐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쓴 맛이 왜 이렇게 좋아지는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자꾸 엉켜 가는 혀로 이렇게 말했다. 그녀 의 두 눈은 충혈 되어 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단맛보다는 쓴맛이 좋아지는 이 유? 그건 아마 우리 안에 있던 순진무구한 영혼이 『 』 2014년 5월호 70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