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5월호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게 된 탓이 아닐까. 달콤할 것 이라 상상했던 사랑이, 머리카락을 곤두서게 하고 심장을 뛰게 했던 그 사랑이 쓰디쓴 배신으로 돌아 오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그녀에 게 이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외로워서 시작된 사랑의 파국 그녀가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뜬금없이 "내 자궁 속에 혼혈아가 들어있어요”라고 말한 것은 소주 두 병을 다 비울 때쯤이었다. “아이를 지우려고 병원에 갔었어요. 그런데 보호 자랑 같이 오래요. 제 보호자가 되어주실 수 없나 요?” 새벽 바닷가, 처음 만난 여자가, 남자에게, 아이 를 지우기 위해, 보호자가 되어 달라, 요청했다. 그 녀는 흐느꼈다, 푸석푸석한 이마를 쓸어 올리며. 외로움에는 사랑밖에 약이 없는데, 외로워서 시 작된 사랑은 언제나 파국을 맞는다. 그것이 우리의 어쩔 수 없는 비극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하려거든 먼저 외롭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친구 를 갖고 싶다면, 깊은 인간관계를 원한다면, 좋은 관계들을 유지하며 외롭지 않게 살고자 한다면, 내 가 먼저 외롭지 말아야 한다. 안된다면 외로움을 완 벽하게 숨겨라. 사랑도, 친구도 없이 외롭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그러하면 온전한 사랑과 친구와 관계 들이 맺어진다. 속이 울렁거렸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녀는 타 국 땅에서 외로웠을 것이다. 검은 눈동자의 그녀는 푸른 눈동자의 남자에게 한때 사랑의 열정을 가졌 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열정은 식었고 대책 없 이 사랑의 산물을 잉태한 그녀는 엉킨 그물 같은 삶 을 풀어내기 위해 낙태를 결심하였으리라. 극히 식상하고 상투적인 이런 줄거리에 나는 속 이 울렁거렸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나는 그녀와 함께 경주 시내로 향했다. 식당에 들어가서 뜨거운 국밥을 같이 먹는 둥 마는 둥 하였다. 아침이 밝아 오고 있었다. 그녀는 경주 시내의 한 산부인과에서 수술을 받 았다. 그녀를 기다리며 병원 앞에서 난 나비를 보았 다. 나비는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니며 꿀도 모으지 않고 빈둥거렸다. 그것은 어디선가 흔들거리며 날 아와 어디론가 날아갔다. 잔잔한 바람에 밀려 높이 솟구쳤다가 다시 유희적인 날개의 율동으로 내려앉 는다. 나비의 모습 앞에서 무거운 모든 것은 무(無) 로 변했다. 배 속에 들어앉아 있던 아이를 떼 낸 그녀는 많이 아파했다. 경주에 떠도는 귀신이 하나 더 생긴 것이 다. 그녀의 집이 있는 서울로 그녀를 떠나보낼 때, 나는 그녀가 나비처럼 가벼워지기를 기원했다. 그 녀는 내게 연락처를 달라고 했으나 나는 애써 그녀 의 얼굴을 외면하였다. 한 생명을 살해한 데 대한 방조범인 나도 더 이상 그 도시에 머물 수 없어서 대구로 돌아왔다. 나는 이 맘 때쯤이면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들으며, 푸른 달빛 아래에서 거친 파도가 철썩철썩 철썩거렸던 문무대왕릉이 위치한 경주 그 바닷가와 구천을 떠돌고 있을 한 불쌍한 영혼을 떠올리곤 한 다. 71 음악과 인생 ▲ 슈베르트 초상 ◀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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