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5월호
피렐리 감독이 “오페라에서 기원전(B.C.)이란 바로 칼라스 이전 (Before Callas)을 의미한다”고 했으랴. 파란만장한 불꽃의 삶 을 살았던 칼라스가 슬럼프에서 재기할 때, 「라 트라비아타」를 스칼라 극장에서 올리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다고 할 만큼 이 작 품에서 여성 소프라노에게 걸려 있는 무게와 대표성은 엄청나 다. 비단 노래 실력뿐 아니라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팔색조 매력까지 두루 갖추어야 함은 물론이다. 또, 이 작품은 소프라노의 아리아만 유명한 것이 아니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제1막의 이중창 「축배의 노래(Libiamo, Libiamo)」는 듣는 순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제목과 멜로디에서 느껴지는 활기와는 달리, 이 노래는 구애하는 알프레도와 이를 튕기는 비올레타의 딴소리, 요즘말로 하면 소위 ‘밀당’이 이루어 지는 오묘한 감정의 변곡을 표현하고 있다. 두 주인공이 부르는 사랑의 노래도 감미롭지만, 필자는 이번 공연에서 제2막에 나오는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과 비올레타의 이중창을 매우 애절하게 들었다. 딸 핑계를 대며 아들과 헤어지기를 종용하는 제르몽 과 큰 결심으로 사랑을 포기하고 자신의 희생이 기억되길 원하는 비올레타의 이별의 약속은 비정한 부정(父 情)에 대한 분노와 감정 이입된 슬픔이 뒤섞여 관객의 심금을 울린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속어가 여기서 생겨난 것일까? 지금 보면 상투적이기까지 한 저 멜로 드라마적 설정은 아름답지만 처절하게 가슴을 찌르는 선율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특히 주요 배역 중 유일한 한국인 가수 유동직 씨가 보여준 바리톤의 음색은, 소프라노와 바리톤의 이중창이라는 위 장면의 감동을 위한 베르디의 안 배를 감안하고라도, 매우 풍부하고 깊이가 있어서, 테너 못지않은 매력적인 배역으로 다가오게 했다. 정말 우 리의 성악가들은 진일보했다(역시 한국인 출신 강요셉 씨가 알프레도로 나오는 공연은 보지 못해 유감이다)! 본말전도 시대의 사랑, 이것은 지금 우리의 이야기다! 이 작품을 초연할 때 베르디는 당대(185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자 했으나, 너무나 직접적인 사회 풍자와 미스 캐스팅 등으로 흥행에 참패하고, 150년을 뒤로 거슬러 배경을 1700년대의 파리로 고치고 난 뒤 재공연 때부터 크게 성공했다고 한다. 필자가 본 작품도 마찬가지고, 현대의 연출 중에는 아예 배경을 20세기 이후인 현대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 다. 왜일까? 이 작품은 단순한 비련의 여주인공, 사랑 앞에서 모든 것을 내던지는 용감함의 찬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실된 사랑을 방해하는, 사랑과 인간이 수단화되고 물질과 계급, 쾌락과 속된 이익에게 자기 자 리를 빼앗기는, 본말전도(本末顚倒)의 시대상에 대한 고발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뒤마와 베르디의 의도였고, 우리는 이 의도를 놓쳐서는 안 되리라. 사랑에 박수치느라, 그 사랑을 억압하고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구조를 반성하지 않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 달 우리는, 우리의 땅에서 자란 우리의 아이들 수백 명을 우리의 바다에서 어이없이 잃었다. 다만 큰 애도로 족하지 말고, 그 비극의 원인이었던 구조와 제도에 대한 고찰과 그 개선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떠 나는 아이들이 마지막 순간에 덜 두려웠기를 바라며, 마지막 비올레타의 아리아를 옮겨 본다. “이상해요!이제아프지않아요.갑자기이상하게도,기운이솟아나요! 아,나는,아,다시살아나는것같아요!오,기뻐라!” ※이전 원고는 필자의 블러그 (http://blog.naver.com/bluemtk)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73 문화가 산책 ●오페라
Made with FlippingBook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