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6월호

65 수상 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운이좋아좋은때가오면바람이일어나등왕각으 로보내주지만운이따르지않으면벼락이천복비를깨 뜨린다.” 『명심보감』의 내용인즉, 사람에게 운이 오면 (왕 발과 같이) 하룻밤 사이에 순풍을 만나 칠백리 뱃길 을 갈 수 있고 운이 가버리면 천신만고 끝에 찾아간 천복비(왕희지의 글)도 탁본하기 직전에 벼락이 떨 어져 비석을 깨뜨린다는 말이다. 왕발의명문으로유명해진등왕각, 3대명루! 왕발은 산서성 사람으로 여섯 살 때 글을 지었고 고종이 불러 박사를 시켰으나 투계(鬪鷄) 격문을 쓴 것이 여러 황자(皇子)들의 닭싸움에 비유했다 하여 쫓겨나 사천성 성도에서 방랑했다. 뒤에 교지(지금 의 베트남 북부) 현령으로 좌천된 아버지를 찾아가 다가 바다에 빠져 익사했다. 아까워라! 그 청운의 푸른 꿈이여! 왕발이 이 서문을 지을 때까지 재미나는 일화가 있다. 당 고조의 아들 원영(元 嬰 )이 홍주도독(洪州 都督)이 되어 이 각을 세우고, 그때 등왕에 봉해졌 기 때문에 ‘등왕각’이라 불렀다. 함형(咸亨) 2년(671 년)에 염 백서가 홍주태수가 되어 여기서 큰 잔치를 열었는데 손님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그 사위에게 글을 준비하도록 하 였으나 감당하지 못 하였다. 왕발은 자리에서 가장 어렸으나 사양 하지 않고 종이와 붓 을 받았다. 도독이 화가 나서 아전을 보 내어 그 글을 엿보게 하였다. 문득 알리고 다시 알려 왔는데 갈수록 뛰어났고, 사조가 화려하고 우아하며 품격은 소탈하고 힘이 있어 “지는 노을은 외로운 기러기와 함께 날아가고 가을 강물은 아득한 하늘과 한빛이로다”에 이르자, 과연 하늘이 낸 재주로다, 무릎을 치며 감탄하고 글 을 완성하게 하였다. 등왕각은 이 명문 덕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왕발 을 내쳤던 고종이 이 서를 읽고 감탄하여 다시 왕발 을 불렀으나 그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글에 나오는 고사를 다 숙지하기만 하여도 ‘고 대사에 밝은 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전편에 걸친 함축, 온고, 직유, 암유 등의 기법이 현란하여 천재 (天才)의 기(氣)가 유감없이 발휘된 명작이다. 등왕각은 왕발 선생의 이 명문 덕으로 황학루, 악 양루와 함께 강남의 3대 명루로 그 이름이 영원 불 후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 다.” 왕발은가장어렸으나사양하지않고종이와붓을받았다. 도독이화가 나서 아전을 보내어 그 글을 엿보게 하였다. “지는 노을은 외로운 기러기와 함께날아가고가을강물은아득한하늘과한빛이로다”에이르자, 과연하늘 이낸재주로다, 무릎을치며글을완성하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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