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6월호

67 수상 백낙천은 아름다운 낙양에 은거하면서 세상을 떴기 때문에 낙천의 묘는 이하강변 부근의 산중턱에 안치되어 있다. 백낙천은 시와 문장이 뛰어났는데 그 중에서도 만고불휴의 장편 서사시, 「장한가(長恨歌)」의 작가로서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져 오고 있다. 현종과양비귀의위험한사랑, 「장한가」 양귀비는 양현염(楊玄琰)의 딸로서 일찍이 고아 가 되어 하남의 숙부 집에서 길러졌다. 후에 현종의 제18왕자 태자수왕(太子壽王)의 비(妃)가 되었는데, 그녀의 미색에 빠진 현종은 수왕에게 새로이 비를 얻어주고, 그녀를 ‘여도사태진(女道士太眞)’이라 호 (號)하여 궁중(宮中)으로 불러들였다. 가무와 음악에 통달한 태진은 현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이때가 현종은 61세, 귀비는 27세로 태진은 현종의 애첩이 된다(이 시에서는 불륜의 사 실은 적시되지 않았다. 지면 관계로 이 시의 전체를 기록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현종은 당초에는 학문문재(學問文才)가 뛰어났고 제위 45년간 정치에 힘쓴 명군(名君)이었는데, 만년 에 현상 장구령(張九齡)을 내쫓고 이임보 (李林甫)를 기용하면서 정치는 점점 어지러워졌다. 귀비를 총애 하면서부터는 귀비의 친척 양국충(楊國忠)을 제상으 로 기용하는 등 국정이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때 하동(河東)의 절도사였던 안록산(安祿山)은 양 국충이자신을견제하는등뜻에맞지않아범양(范陽) 에서 반기를 들고 위세를 떨쳐 새로운 나라를 세웠는 데, 국호를대연(大燕), 연호를성무(聖武)라하였다. 이를 토벌하기 위해 현종이 마외파(馬嵬坡)에 도 달하자, 군(軍)은 반란(亂)의 원인을 제공한 양국충 과 양귀비를 제거하도록 요구한다. 현종은 하는 수 없이 불사(佛寺)에서 두 사람을 처형하도록 명했고, 결국 양귀비는 고력사(高力士)에 의해 죽게 된다. 한황중색사경국(漢皇重色思傾國) 황제는색을좋아해미인을생각하고 어우다년구부득(御宇多年求不得) 재위여러해구했지만구하지못했네 양가유녀초장성(楊家有女初長成) 양씨집에한처녀커가자 양재심규인미식(養在深閨人未識) 집안깊숙히두고키워사람들알지못했네 천생려질난자기(天生麗質難自棄) 하늘이내린미모마음대로버릴수없어 일조선재군왕측(一朝選在君王側) 하루아침에선택되어군왕의옆에있게되었네 회모일소백미생(回眸一笑百媚生) 고개를돌려한번웃으면백가지아름다움이생겨 육궁분대무안색(六宮粉黛無 顏 色) 후궁의미녀들은낯빛이무색해졌네 「장한가」의 앞 구절을 읽노라면, 양귀비의 아름다 움이 가히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필자 일행이 양귀비가 목욕을 하였다는 화청지(온 천탕)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서는 「장한가」를 소재로 한 쇼가 펼쳐지고 있었는데 하루에도 수만 명의 관광객이 들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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