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6월호

소리 내어 울었다. 녀석들을 작은 종이상자에 담아 흙을 파서 묻어주고, 나뭇가지로 십자가 모양을 만 들어 묘비도 세워주었다. 지나다니는 동네 멍멍이 들이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땅을 발로 꾹꾹 눌 러 놓는 일도 잊지 않았다. 새로 사온 병아리들도 그 후 여섯 마리가 더 죽고, 그 중에서 네 마리만 살 아남았다. 사랑이 없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어린 나는 병아리의 죽음 때문에 사랑이란 것에 대해 처음 생각해본 것 같다. 날 깎아내고, 희생시 켜서라도 너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고 싶다는 그 마 음이 어쩌면 사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네가 더 이상 날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는 사라지지 않으 리라, 그 마음이 사랑인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널 위해 날 사랑하마, 너로 인해 내 존재의 의미 를 찾을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나, 당신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 같으나, 당신 때문에, 아니 당신 덕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그런 게 사랑일 수 있겠 구나. 무언가 생명체를 기른다는 건, 아주 강렬하고 행 복한 경험이었다. 그 후 우리 가족은 옥상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고, 이제 중닭이 된 병아리들은 그 옥상에 놓아기르게 되었다. 학교를 다녀온 뒤, 옥상 으로 병아리들을 보러 가는 일이 큰 즐거움이었다. 녀석들은 내 꽁무니를 따라다니기까지 하였다. 그 럴 때면 내 가슴은 사랑의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지금은 남매의 아버지가 된 막내 삼촌이 첫 휴가를 맞이해 집에 오게 된 날 이었다. 학교를 다녀와 보니 삼촌이 오면 주려고 맛 있는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밖이 소란스 러워져 나가보니 살아남은 병아리(중닭) 네 마리는 이미 휴가 나온 삼촌의 손아귀에 잡혀 목욕탕으로 끌려간 뒤였다. 어린 나와 동생들은 맛난 반찬이 놓인 밥상머리에 앉아 그야말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무언 의 단식 투쟁을 벌였고, 그것이 그동안 길러왔던 그 병아리 네 마리에게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애정의 송 별이었다. 나는 근 한 달 동안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병아리들의 사인(死因)이 내 사랑과 관심의 결핍은 아니었던가, 크게 자책하며 많이 아파했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는지,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한 송이 국화꽃이 된 세월호 아이들의 부모가 오 열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보았다. 견딜 수 없어 자 리를 박차고 나왔다. 복도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 내 무는데 센서 작동의 복도조명이 담배 한 대 피우 기도 전에 꺼진다. 인정사정없이 꺼진다. 그 불쌍한 아이들이 숨을 거두 듯. 사랑이 없다면 그 어떤 이데올로기로도, 어떤 광 기로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이 없는 한 어떤 식물도, 동물도, 사람도 이 삭막하고 황량 한 사막을 건너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탐욕이 그 가련한 생명을 앗아갔다. 육교 위의 네모난 상자 속에서 처음 나와 만난 노 란 병아리 얄리는, 처음처럼 다시 조그만 상자 속으 로 들어가 우리 집 앞뜰에 묻혔다. 71 음악과 인생 N.E.X.T. 멤버들 ▲ N.E.X.T. 앨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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