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6월호
는 것이 필연이다. 롤란드와 마리안의 만남은, 그런 의미에서 우연의 연속이고, 동시에 필연이 다. 지금 내 존재와 관계 모두가 필연인 동시에 우연이다. 그 많은 주름과 변곡 을 이을 때 내 삶이 그려지는 것일 게다. 그 후에, 소멸 후에 남는 사람은? 기 억(memory)을 가지게 된다. 그 기억 안의 모든 일들은, 이제 수많은 우연이 아닌 필연의 과거로서만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재생되고 반복될 것이다. 이것 은 절대적인 것이다. 마리안은 죽음을 앞두고 롤란드에게 말한다. “우리에겐우리가함께한모든시간들이있어. 당신은우리의모든시간들을 가지고있을거야.내가가고없더라도,그시간들은늘어나지도,줄어들지도않을거야.비대칭이야,비대칭….” 소도구 없이 두 사람만의 ‘섬세한 연기 호흡’, 흥미진진한 무대 역대 최고의 ‘앨런’(Alan, 연극 「에쿠우스(Equus)」의 주인공) 출신으로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아온 최광일 과, 주목받는 신인에서 이제는 깊이를 가진 중견 연기자로 돌아온 주인영의 호흡은 자칫 지루할 수도 단순해 보일 수도 있는 구조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어 주었다. 매번 같은 상황이지만 정조를 달리한다는 것은 고난도 의 섬세함과 호흡의 자유를 요구하는 극적 장치다. 카메라 앞에서의 끊어진 연기가 아닌 잠깐의 암전과 함께 하는 이 변주가 이 작품 감상의 별미라고 생각한다. 무대는 「어린왕자」의 별을 연상시키는, 어느 한 행성의 표면을 형상화한 듯 땅과 같은 느낌의 곡면으로 되 어 있다. 시멘트를 발라놓은 것처럼도 보인다. 조명의 변화를 통해, 같은 곳은 몇 걸음만 걸으면 전혀 다른 공간으로 합의된다. 그 외에 일체의 대·소도구가 없는 무대에서, 한 번도 옷을 갈아입지 않는 주인공들이 기 댈 것은 오직 자신들의 연기력뿐이다. 반면, 조금은 미덥지 않은 점도 있었다. 마리안은 자신이 병으로 인해 갈수록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서 “철자”라고 하고는 “치읓, 이응, 시옷...”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연극의 주인공들은 영국인으로 등장한다. 따 라서 그 부분은 “spelling”이라는 단어를 전제하고, “s, t, n...” 등 영어 알파벳으로 말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마리안의 복장도 너무 한국의 중년 아줌마 티가 난다. 나이가 특정되지 않은 마리안은 20대일 수도 40대일 수도 있지만, 적당한 롱스커트에 여성스런 구두를 신어도 되지 않았을까? 무대연출에서도 마지막 순간을 수놓은, 제목 그대로 ‘별무리’의 반짝거림은 환상적이었고, 이를 통해 방금 본 장면이 멀리 있는 수많은 별들 중 하나, 평행우주 안의 사건일 수 있다는 조망을 가능케 해준다는 것에서는 높 이 살 만하지만, 보다 효과적으로, 보다 자주, 보다 조금은 물러난 시선으로 중간중간 의식할 수 있도록 해주었 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 무대 위에는 아무것도 없이 오직 두 사람만이 등장해 모든 이야기를 펼쳐가므 로, 원형극장(arena theatre) 형식으로 사방에 관객이 둘러앉아 볼 수 있도록 만들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누군가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그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동안의 희로애락과 기억은 그대로 남는다.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끊임없이 무한 반복 재생된다. 이 땅의, 온 우주의 왔다 가는 존재들이여, 그들을 떠나보낸 이들이여, 너무 슬퍼하지 말자. 없어지지 않았다. 모두의 가슴 속에 있다. 우리는 그들의 모든 시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의 희생자 및 유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애도의 묵념을 드린다. 73 문화가 산책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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