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7월호

수상 어르신과젊으신 내가 사는 가까운 곳에 이름난 부곡온천이 있다 보 니 매주 온천물로 목욕하는 호사를 누린 지도 벌써 30년 가까이 된다. 하긴, 농사일로 땀 흘린 농부조차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고, 못자리 끝내거나 농약 친 후에도 온천물에 뛰어드는 ‘부곡면 거문리’ 사람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습관화된 온천욕 덕분인 지 서울 친구들의 모임에 갈 때마다 얼굴 등 피부 좋 다는 소리를 들으며 우쭐한 적도 있었는데 이제 시들 해지는 나이에 접하고 보니 그마저 부질없다. 어제는 친구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고 친구들과 늦 게까지 미주알고주알, 신소리, 허튼소리로 밤새우다 유성온천을 찾게 되었다. 인구밀도 높은 수도권과 가깝기 때문인지, 아니면 워낙 온천의 효시로 소문 난 곳이어서인지, 이 곳 대중탕은 그야말로 대중으 로 가득차 평소 한적하게 즐기던 내 지역에서의 온 천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러니평소처럼20여분누워즐기던여유는커녕앉 을자리조차찾지못해논산훈련병시절의샤워하듯대 강 마치고 나가려다 마침 입구에 앉을 자리가 보여 동 작빠르게한자리차지하여면도를하려는순간이다. 뱃살 넉넉한 중년의 남성이 나의 어깨를 지그시 누르며 “어르신! 이곳이 제자리인데요!” 하는 게 아 닌가. 순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러고 보니 앞에 보 이는 세면도구가 이미 놓여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 런가 보다 하고 일어서려는데, 이 친구 “어르신! 앉 으신 김에 제가 등을 밀어 드리겠습니다” 하면서 때 밀이 수건으로 비누칠을 슥슥 하더니 목덜미부터 닦 아대는 게 아닌가! 난 평생 내 몸을 때밀이에게 맡긴 적이 없는 양서 류 개구리 체질의 목욕만을 했다. 온탕 냉탕 왔다 갔 다 하다가 비누칠 한 번으로 끝내는 목욕법이 나의 습관인데, 우람한 팔뚝에 문신자국까지 있는 ‘젊으 신’ 이가 내 목덜미부터 등짝을 훑어내리니 이게 무 슨 봉변인가! 이런 게 싫다고 거절이라도 하려 했지만, 이 친 구 아직은 내게 익숙하지 않은 존칭인 “어르신! 어르 신!”을 넉살좋게 부르며 열심히 때를 벗겨 내는 통에 황당하고 불편해도 어쩔 수 없이 참아야만 했다. 불과 2~3분의 시간이었지만 별 생각이 다 들었 다. 손님이 붐비고 복잡하니까 이렇게 등짝만 밀어 주고 돈을 달라고 하는, 이 지역에만 있는 프로패셔 널(professional)한 영업 수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 도 했고, 내가 정말 노인네처럼 보이니까 어르신한 테 좋은 일 한다고 하는 건데 내가 괜한 오도방정 떠 는 것인지, 혹은 효도 못 받고 돌아가신 젊으신 아버 지 얼굴이 나와 닮기라도 했나 하는 생각 등…. 이 친구 등을 밀면서도 정성스럽게 밀고 “어르신 피부도 좋으십니다!”, “자주 오십니까?”, “가까운데 사십니까?” 하고 묻는 등 덕담까지 건네며 등을 다 밀고는 “좋은 하루 되십시요!” 하고, 내가 고맙다는 인사할 틈도 없이 대중 속으로 사라지는 게 아닌가! 나는 멍한 상태로 잠시 앉아 있다가 내가 정말 어 르신이라서 젊으신 이가 내게 친절을 베풀었다고 생 각키로 하였는데, 순간 내 팔뚝에 찬 번호표를 보면 서 팔뚝까지 밀어줬던 그 젊으신 이가 “혹시(?)” 하 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 분명 내 번호표를 봤을 테고, 나보다 먼저 나갔으니 어쩌면…” 김 영 석 ■ 법무사(경남회) 『 』 2014년 7월호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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