血인문학의창 『논어』,사람에대한 꿈을꾸다! 이 상 진 1 법무사(서울중앙회) • 본지 편집위원 • 법악박사 1. 공자(孔子)의 생애 공자(B.C. 552-479)는 원래 노(魯)나라 창평향 (昌平鄕)의 추읍(諏邑)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조를 거슬러 올라가면 은대信針t)에까지 올라가므로 공자 자신이 은인信先사이라 했으나, 송(宋)나라 민공(滑 公)의 6세손 가(嘉)에 이르러 따로 족성僖濁:)을 가 지게 되어 이때부터 공씨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가의 후손 방숙(防叔) 때부터 노나라로 옮겨와 노 나라사람이 되었고, 방숙은백하(伯夏)를낳고백하 는 홀(乾)을 낳았는데 홀이 바로 공자의 아버지다. 홀은 자가 숙량(叔梁)으로 노나라 창평향 추읍의 관 리였으며, 여러 과정을 거친 후 안씨億頁氏)의 셋째딸 징재(徵在)와 결혼해 공자를 낳았으나(B.C. 552) 공 자 나이 3세에 별세했다. 공자는 19세에 올관씨(亢官氏)에게 장가들어 아 들 이頃埋)를 낳았으나, 공자 나이 50세에 공자보다 먼저 죽었다. 이(經)가 낳은 아들은 급(仮)으로 자 는 자사(子思)이다. 자사는 공자의 사상을 이 어 받아 『중용(中庸)」을 지었고, 맹자(孟子)에게 유학(儒學) 을전승했다고한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 양친을 잃은 공자 는 생계를 위해 창고관리인, 가축관리인 노릇을 했 고 능력을 인정받아 노나라의 사공(司空; 농정국장 급벼슬) 직책을 맡았다. 얼마 되지 않아 뜻을 세워 고국 노나리를 떠나 제(齊)·송(宋)·위(衛)·진(陳)·채 (蔡) 등 여러 나라를 전전한 후 다시 노나라로 돌아 와철저히 예(禮)를탐구하였다. 자연히 고대의 역사, 정치, 사회, 윤리, 도덕, 예 술 등 각 방면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었고, 이러 한 광범한 지식은 어느 한 사람에게만 배울 수 없어 다시 주恨l)나라로 가 의례(儀禮)를 연구하고, 노자 (老子)를 만나 예를 묻기도 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공자의 나이 30세 전의 일이 다. 30세에는 주價)나라에서 귀국했고,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안영(姜環)을 데리고 공자와 대화한 바 있다. 35세에는 전국(戰國)의 혼란 속에서 제후들의 상담 격이 되어 있었고, 다시 제(齊)나라로 건너가 태사(太師)와 음악을 논하고 ‘소(紹)’라는 음악을 배 웠다. 그리고 제나라를 떠나 다시 고국 노나라로 귀 국했다. 42세가 되자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단념하고, 학 문탐구와 역사, 음악관계 서적을 편찬한다. 그러나 50세에는 명성을 얻어 노나라 정공(定公)에 의해 등 용되어 대사구(大司冠; 사법대선)를 거쳐 재상의 일 까지 섭행(攝行)했으나 이웃나라에서 공자를 제거하 는 간계를 써 결국 노나라를 떠나게 된다. 이후 14년간 공자는 위·송·진·채·초(楚)·조頃i)· 정(t~) 등을 주유천하偏遊天下)하면서 온갖 고생을 한다. 결국 도덕적 질서를 바로잡는 데 회의를 느낀 공자는 벼슬을 단념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교육과 시 (詩)• 서 (書)• 역 (易)• 예(禮) • 악(樂) • 춘추(春秋) 등 문 ® 『법무샤』 2014년 9麟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