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이성에 대한 반성이 19세기 말 시대정산으로 자 리잡으면서 인간촌재의 위기에 대한반성이 일어나 고, 하이데거의 근원적 사색 역시 이러한 위기의식 의하나라고볼수있다. 당시 후설의 현상학은 데카르트와 칸트적 이성에 대한 신뢰에 의거하였으며 역사적 전통에서 벗어나 있었으나 하이데거는 딜타이의 영향 하에 역사에로 이끌려들어갔다. 세러는 후설의 이성적인 ‘의식’을 ‘인격’이라는 보 다 구체적인 현상학으로 파악하였으며, 야스퍼스는 삶을 ‘한계상황’의 개념으로 보다 첨예화하여 실촌현 상을 두드러지게 하였으나 그들의 작업이 하이데거 에 와서 보다 구체적인 ‘인간존재’로 이끌어 들이게 되었다. 그는 1928년 후설의 퇴임에 따라 프라이부르그대 학의 정교수가 되었고, 1933년 5월에 44Ai1의 젊은 나이에 총장에 취임하게 되었다. 이때에는 히트러 (Hittler)의 나치 치하였다. 이후 하이데거는 나치에 동조했다는 비난의 포화를 받으며 1934년 2월, 총 장 취임 10개월 만에 사임이 강요되었다. 이후 1939년, 그의 나이 50세에 제2차 세계대전 이 발발하고 그는 전쟁에 징발되어 돌격대로 나가게 되었다. 1945년인 56세에 이 비참한 전쟁이 종결되 지만, 하이데거는 나치에 협력했다는 죄로 점령군에 의해 모든 교직에서 추방되는 기구한 운명을 맞게 된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8· 15 해방 후 ‘친일파’로 몰리 고, 5·16군사정권에 협력한학자들이 백안시 당한 것과 같은 현상(예컨대, 헌법학자 한태연 교수의 경 우 등)이 이곳에서 그 당시에 이루어졌다. 2. 하이데거의사상 1) 기초적존재론 하이데거는 존재(存在)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인 문제를 그의 철학의 과제로 삼았다. 그에 의하 면, 존재’와 존재자’는 서로 다르다고 하였다. 촌재 자는 특수한 촌재, 특수한 사물이지만 촌재는 아니 다. 존재는존재자이게 하는것이다. 예컨대, 백묵은 존재자이다. 그러나 백묵의 존재 는 칠판에 글을 쓰는 일이다. 백묵이란 촌재자는 ‘촌 재적(ontish)’이다. 그러나 백묵의 촌재는 촌재론적 (ontologisch)이다. 전자를 다루는 것이 개별과학이 오, 후자를 다루는 것이 철학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촌재를 문제 삼았으나 결국 그들은 촌재자를- 논하였 던것이다. ‘존재하는 것(存在者)은 무엇인가’라는 전통적 인 철학적 문제에서 일보 전진하여 ‘존재란 무엇 인가’ 즉, ‘있는 것’에 대한 ‘있음’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 하이데거 철학의 목표요, 이것이 곧 존재론 (ontologie)' 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는 인간존재, 곧 실촌을 촌재 해명의 실마리로 삼았다. 왜냐하면 모든 촌재자 중 에서도 오직 인간만이 불분명한 정도에서나마 그 자 선의 존재가 무엇인가를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촌재이해를 가전 인간촌재를 통로로 하 는 존재론은 곧 실존을 통로로 하는 철학이다. 그러 므로 실존을 철학의 궁극적 목표로 한다기보다도 실 촌의 해명을 통해 실촌일반을 밝히려는 것, 그것이 소위 ‘기초적 촌재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자를 그는 ‘현촌재(現存在)’(Dasein; Da라는 접두사는 ‘거기’란 의미를 가지므로 거기에 있다는뜻)라했다. 그리고 현존재, 곧 인간의 고유한 존재방식을 ‘실 촌’이라 하였고, 이러한 실촌을 밝힘으로써 촌재 그 자체를 해명하려고 하였다. 이것이 곧 그의 ‘현상학 적 존재론’ 또는 ‘기초적 촌재론’이다. 이와 같은 그의 철학, 곧 현상학적 존재론은 실존 구조를 해명하는 존재론이기 때문에 ‘실존철학’이라 。인문학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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