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10월호

血 인문학의 창 ► 실존주의 철학(6) 할수있는것이다. 2)세계안의존재 그의 현존재는 ‘거기에 있다는 것’ 즉, 인간이 어 디에서 와서 어디로가는지도알지 못한채 이 세계 안에 던져졌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하이데거는 이를 ‘피투성(被投性; Geworfenheit)’이라 하였다. 그러나 현촌재는 이 세계 안에 내던져져 있는 동 시에 존재의 모든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 측, 현촌 재는 피동적이고 운명적으로 거기에 내던져 있을 뿐 아니라, 능동적으로 미래를 향해 자산을 내던져 질 가능성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기투성(企投性; Entwurf)’라 하였다. 피투성은 필연적인 결정을 의미하는 반면, 기투성 은 ‘가능성의 자유(Freiheit)’를 의미한다. 필연성과 가능성, 결정과 자유, 피투성과 기투성의 두 계기가 통일된 것이 현촌재의 특성이다• 피투성인 동시에 기투성의 존재인 현촌재는 이 세 계 속에서 항상 주체적 관념을 가지고 시는· 특수한 존재이므로, 이러한 현존재를 그는 ‘세계 안의 존재’ 라고규정하였다. 따라서, 인간이 존재한다고 할 때 인간은 언제나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세계와 교 섭한다. 환언하면, 항상 자기 주위, 곧 환경세계에 대해 염려(Sorge)하면서 생활한다는 것이다. 예컨 대 인간은 우선 어떤 집에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 고, 무엇을 만드는 등 사물의 세계 속에서 사물을 이 용하며살아간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우선 사물에 대 한 마음을 쓰고, 두루 살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시물에 대한 관심 속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 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마음을 쓰면서 살아간다. 이와 같이 염려는 일상적으로 다른 사물에 대해서는 ‘배려’로,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고려’로 나 타난다. 이러한 염려가 현촌재의 근본성격이다. 인간에겐 자산의 촌재뿐만 아니라 다른 촌재자의 촌재까지도 이미 개시(開始)되어 있다. 인간에 있어 서 촌재가 개시되어 드러나 있다고 하여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Dasein)’라 한다. ‘Da’란 드러나 있 다는의미이다. 우리는 평소의 일상생활에 있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세계에 관해 끊임없이 주의하며 두루 살피고 있다. 생활상 내가 교섭하는 모든 존재자는 그저 막연하게 나의 앞에 놓여있는 물건이라기보다 무엇에 유용한 것으로서 먼저 대하게 된다. 이 유용적인 교섭을 중심으로 나는 나의 환경을 항시 두루 살피는 것이요, 그 무엇을 위하여 ‘두루 살핌 (Umsicht)’으로부터 그 무엇을 ‘위하여 (um)’라 는 성격을 제거한 추상태(抽象態)가 그저 ‘보는 것 (Sicht)’이라는 것이다. 즉, 유용성을 띤 ‘두루 살핌’에서 그 무엇을 ‘위하 여’라는 성격이 결여된 것이 보통 말하는 인식, 또는 과학적인 관찰의 태도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모든물건에 대해 두루살피며 용심(用心; Besorge) 을 하거니와 또 그러한 물건을 통해 혹은 넘어서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대한다. 사랑하거나 증오하거나 우리는 하나의 공동세계 를 형성하면서 서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염려(念 慮)'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이데거는 인간의 현 촌재를 그 구조의 통일적인 현상에 있어서 ‘관심 (Sorge)’이라고 규정한다. 3) 무(無)에서의 볼안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본래의 자기, 즉 자선의 실촌을 바로 들여다보지 않고 소위 세상사람 (das Man)의 세계에서 퇴폐 또는 전락한 생활을 하 고있다. 남의 소문이나 주고받고, 잡담이나 하고 유행에 ® 『법무샤』 2014년 1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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