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10월호

따르고 호기심에 사로잡혀 본래의 자기를 잃어버린 일상성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을 하 이데거는 곧 ‘속인(俗人)의 생활이라 하고 무자각, 무책임, 무성실의 태도라하였다. 이러한 퇴폐적인 세상사람의 생활에서 본래적인 나, 곧 자기의 실존을 찾아야 한다. 허위의 장막에 가려진 일상적이고 非본래적인 자기에서 진실된 본 래적인 자기에로 돌아가게 하는 근원적인 것에는 ‘불안(Angst)’이 있다. 불안은 구체적인 어떤 대상에서 오는 위험스런 마 음인 '공포와 구별되어야 한다. 불안에는 일정한 대 상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무(無)’ 곧 죽음에 대한 불안이다. 현촌재는 원래 유한한 존재요, 죽음에의 존재이다. 현존재는 유한한 존재로서 ‘무(無)’에 접 해 있고, 죽음 앞에 서 있음을 말한다. 이것이 불안 의근원이다. 죽음은 현촌재에게 던져진 끝'으로서 현촌재의 가 장 자기적이고,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 없는 다른 사람과 不교섭적인 결코 넘어설 수 없는 확실한, 그 리고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불안한 것이다. 이 같은 ‘죽음의 불안’에 의해서 非본래적인 세계에의 몰입으 로부터 벗어나서 본래의 참된 자기를 자각하고 자기 에로귀환한다. 4) 본래적인 자기회복(自 己回復) 우리는 ‘죽음에의 촌재’라는 촌재가능에의 선구적 洗園的)인 존재에 있어서 인간이라는 현촌재가 그 의 유한성(有限性)에 있어서 전체적으로 개시(開示) 됨을 보았지만, 이제 양심의 호소에 대한 응답으로 서의 결단성(決斷性)에 있어서 그의 본래적인 현시 성(顯示性)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현촌재의 촌재를 전체적으로 밝히는 선 구어編)와 미래적으로 소환하는 결단성이 합쳐친 것 즉, 선구적 결단성(先賜的決斷性;Vorlaufende Entschlossenheit)에 있어서 우리논 비로소 본래적 이면서 전체적인 존재현시’(存在顯示) 즉, 가장 근 원적인 촌재현시에 이르게 된다. 하이데거에 있어서 의 근원성(根源性)은 전체성과 미래성의 양자를 포 함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선구적결단 성이야 말로 가장 우월한 포괄적인 존재현시의 가능 성이다. 그는 죽음 혹은 ‘무(無)’를 매개로 한 선구적 결의 에 의하여 실촌을 본래적 자기로 끌어가려 한다. 피 투성이로 인한 퇴폐와 전락으로부터 본래적 실촌을 찾으려는 투기(投企)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 에서 실촌은 운명을 짊어지고 개척해 나가는 ‘피투 적 투기(被投的 投企)'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죽음 속으로 던져져서 죽음 을 향해 살고 있는데, 죽음 앞에 선 인간이란 예외 없이 전실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을 염두에 둘 때 인간은 양심의 소리 에 귀를 기울이게 마련이다. 즉, 사람이 늘 자기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있으면 그는 엄숙해지고 진지해 지고 성실해지게 마련이다. 이리하여 그는 ‘죽음에로의 존재임을 깨달아서 불 안한 인간은 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 므로 유일하고 절대적인 인생을 결의할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이 생애에 하나밖에 없는 가장 빛나는 인생 의 코스를 진실하게 살 것을 아낌없이 결의하는 것, 즉선구적 결단성(일명, 선구적 결의성)을가지고사 는 것은 가장 진실한 인생을 시는· 것이 된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양심이라고 하는 것 또는 양 심의 소리라고 하는 것은 일상성의 세계 속에 전락 (轉落)했던 본래의 자기, 즉 실촌을 회복하려는 부르 짖음이다. 여기에서 그의 실촌은신(神)을향하는실존이 아 니고(하이데거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자 임), 양심의 입장에서는 윤리적 실존인 것이다. 龜 ® 인문학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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