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법무사 11월호

圓인문학의창 율곡(栗谷), 떡몽요결』로답하다! 이 상 진 1 법무사(서울중앙회) • 본지 편집위원 • 법악박사 ' Tt' 오래전에 붕우(朋友)인 벗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가 경(敬)과 궁리(窮理)를 이야기하면 서, 격몽요결 서문을줄줄외워 나갔다. “人生斯世에, 非學問이면 無以爲人이니라. 所謂學 問者는,亦非異常別件物事也니라.只是爲父當慈하 고… " 어릴 때 조부(祖父)님한테 회초리를 맞으면서 배 웠다는 지난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서! 그 친구가 길 잡이(Road Map)가 되어 기초 공부를 시작한 고맙 고, 즐거운 추억이 있다• 친구의 깊은 우정에 감사 드린다. ► 덕몽요결(擊問戱)』이라는책 • 「격몽요결」은 1577년 율곡(栗谷) 이이(李펴)가 학문을 시작한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집필한 책이 다. 조선시대에는 가장 기본적인 교과서로 학문생활 과 일상의 윤리 등을 가르치는 일종의 초등교과서라 고할수있다. 「격몽요결표7 입지(立志), 독서(讀書), 사친(事親), 상제(喪制), 제례(祭禮), 처세偶;世) 등 10장으로 구 성되어 저술 직후부터 널리 유포되었고, 인조 때는 전국 향교에서 교재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 책을 자칫 어린이들이 읽는 책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어느 의미에서 인간은 누구나 무 지 속에 있음을 깨우쳐야 하므로 그 대상은 남녀노 소를가리지 않는다. • 율곡의 개혁은 붕당과 선조(宣祖)에 의해 번번 이 좌초했다. 뜻을 펼치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파 주를 거쳐 해주로 돌아갔다. 집안 전체를 이끌고 살 작정으로 터를 잡고, 가난한 살림이지만 대가족의 질서와 화합을 이루고자 노력했다. 백사 이항복의 기록에 의하면 대장간을 세우고 호미를 만들어 팔 았다고한다• 「격몽요결운: 이곳은거지에서 만들어 졌다. “내가 해주에 살 때, 한 두 학도가 공부를 하겠다 고찾아왔댜 나는선생이 될자격이 아닌데댜또초 학지들이 방향도 모르고 굳건한 의지도 없이 그저 찾 아와서 이것저것물어대서는피치에도움이 안되고 남의 비난만 살 것이...,l에 간단히 책 한건을 엮어보 았댜 여...,1 학문을 향한 결단과 실천에서 부모를 모시 는 태도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하는 법까지를 개 략 적었다. 제목은 “격몽요결”이라고 붙였다 학도들 이 마음을 씻고 자리를 잡아서, 바로 이 훈련에 돌입 하...,l률바란다. 나도그동안의 묵은때, 인습이 늘걱 정이었는데, 이 책으로새로운각성과성찰의 계...,l로 삼고자한다. 정축(1577)년 늦겨울 덕수 관향의 이이 쓰다.” @ 『법무샤』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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