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법무사 1월호
76 이 규 환 법무사(서울중앙회) 펄 S.벅의 「동풍서풍」 “우리의 정신을 얽매는 구습에서 벗어날 것이오!” 1930년 처녀작, 중국의 전근대성 비판 미국인 펄 S. 벅(1892∼1973)은 태어난 지 몇 개월 되 지 않아 장로교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 가, 1910~1914년 대학 공부를 위해 잠시 미국에 머문 것 빼고는 생애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보냈다. 오랜 중국생활 끝에 펄 벅은 자신을 중국 사람으로 착각할 만큼 중국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펄 벅은 1932년 뉴욕 강연에서 “중국에선 선교사가 필 요 없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제발 다른 비기독교 나라에 가서 선교할 때 오만함을 버리기 바랍니다”라 는 발언을 했다. 유일신 사상에 뿌리를 둔 기독교 신앙 의 문제점에 대해 작심하고 한 말이었다. 이 발언으로 펄 벅은 장로파 전도위원들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고 선 교사 직위를 사임하기도 한다. 한편, 펄 벅은 미국 내 아시아인들에 대한 차별을 지 적하며 그들의 인권에 대해 큰 목소리를 냈고, 흑인 인 권 향상에도 힘썼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이 중증 지적장애를 앓으면서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을 경험하는데, 이를 계기로 펄 벅은 1964년 ‘펄 벅 재단’ 을 설립하고 한국 전쟁 중에 태어난 혼혈아나 중국 등 지의 혼혈아들을 주로 미국가정에 입양시키는 대대적 인 복지사업을 펼쳤다. ‘박진주’라는 한국이름도 가지고 있는 그녀는 한국 을 무대로 한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라는 소설을 쓰기도 하였다. 펄 벅은 1938년 3부작 소설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오늘 소개하는 작품 「동풍 서풍」은 노벨상 수상 8년 전인 1930년에 발표된 처녀 작이자 출세작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주인공 궤이란이 ‘언니’라고 통칭되는 중 국의 모든 여성들에게 여성들의 지위를 어떻게 회복해 야 하고, 동서양의 다른 문화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지를 서간체 형식으로 전하는 소설이다. 사랑에 장벽은 있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중국 사회 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마치 ‘성노리개’처럼 취급 되는 여성들의 지위 문제를 벽안(碧眼)의 눈을 가진 여 성작가의 시각에서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런 문 체로 지적하고 비판하고 있다. 소설의 배경은 물론 오늘날이 아니라 청나라가 무 너지고 아시아 최초로 공화정인 중화민국이 수립된 1911년 신해혁명 이후부터 1930년대 사이 중국 사회 다. 하지만 소설에서 다뤄지는 공간이 중국이 아니라 그 반대의 미국이라 해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크 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가 부딪치고 충돌하는 것은 비단 과거나 중국에만 국한된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당시 중국에서 여성은 연꽃에 비유되며 남자의 손바 닥 위에서 춤을 출 수 있어야 한다며 발의 길이가 10cm 를 넘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발이 자라지 않도록 ‘전족’을 차고 지내야 했고, 이를 매우 당연한 것 으로 여기는 폐습이 이어져 오고 있었다. 「동풍서풍」의 궤이란은 일찍 부모님이 정해 놓은 정 혼제의 약속에 따라 서양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전문 수련의와 결혼을 한다. 전족도 풀지 못한 채 전통적인 법무사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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