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법무사 1월호

『 법무사 』 2015 년 1 월호 81 문화가산책 어느덧 관객에게 익숙해진 조희봉, 이화룡, 오광록 등의 조연은 수준급이었으나, 에스텔라(아역·성인 모 두) 역의 어색함은 더 많은 무대 훈련이 필요해 보였다. 또, 몇몇 배우의, 서양극(번역극) 특유의 어깨를 움츠 리고 두 팔을 벌리거나 손바닥을 뒤집는 등의 의미 없 는 반복된 동작은 정말 지양해야 하는 발(?)연기다. 필자가 보기에 가장 역할을 잘 소화한 배우는 핍의 누이와 친구 역할을 동시에 소화한 배우 이혜원과 어 린 핍 역의 최성호였다. 백오십 년 전의 핍과 지금의 우리도 같은 상황일 것 이다. 갑자기 거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사랑하 는 여인을 갖고 싶은 소유욕과 신분상승 욕망에 빠져 들며 점점 이전의 순수했던 모습을 잃어버리고 타락해 가는 핍의 모습은, 갈수록 물신(物神)주의에 빠져들며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 지 않아 보인다. 부와 재산의 소유 정도가 행복과 비례하는가, 순수 로부터 멀어지지 않으며 늙어갈 수 있는가 등의 물음 에 대해 시대가 진보했다고 하여 올바른 해답을 가지 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필자 스스로도 십 년, 이십 년 전과 달라졌음을 느낀다. 시간이 흘러도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이런 본질적인 물음을 던져줄 수 있는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고전일 것이다. 살인자의 건강법과 대학로 소극장이 주는 저력 「우연한 살인자」의 2013년 초연이 재기발랄함이었다면, 이번의 재공연작은 그 기대가 컸었던 탓인지는 몰라도 그렇 게 대단한 묵직함으로 다가오 지는 못했다. 우선 객석의 높이 차가 충분하지 않아서 앞 사람의 뒤통수 너머로 고개를 빼들고 봐야 했고, 그러면 또 뒤의 관객이 불편을 겪었을 것이었다. 무대 또한 깊이가 충분치 않아서 다양하고 시시때 때로 바뀌는 장면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에 애를 먹는 듯 보였다. 배우들도 마음껏 움직이거나 소리 지 르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 답답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작품의 존재와 예술가들의 노력에 경외 와 감동을 느낀다. 열흘 남짓밖에 안 되는 공연을 위 해, 작가와 배우, 연출, 무대, 조명, 음향 등 모든 분야 의 식구들이 혼신의 힘을 뽑아냈다. 공연 수익이라고 해 봐야 적자를 면하면 다행이고, 참여자들에게 돌아 가는 개런티는 비정규직 최소임금에도 못 미친다. 신춘문예 당선작에 가까운, 작가의 미숙한(?) 작품 을 함께 연습을 통해 완성시켜 가는 공동 작업이 주는 보람과 끈끈함, 웃으며 흘리는 눈물의 양은 남다를 것 이다. 작품의 완성도도 수준급이다. 흥행만을 추구하 는 상업 연극과의 차별점이다. 2013년 작품 평에서 필자는 ‘악의 평범성’과 ‘철저 한 무사유’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그런 시각이 부각 되고 공감을 얻는 데는 이번의 재공연작이 더 효과적 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불행과 너무나 나쁜 적이 존재 할 때, 그것은 오히려 적의 행동을 쉽게 합리화하고, 관객을 피곤하고 무감각하게 할 수 있다. 지나친 심각 함, 사건의 연속, 엄청난 갈등의 폭발이 현실을 되돌아 볼 기회를 박탈할 수 있음이다. 우리는 복수를 통쾌해하기보다는 우리 역시 피해자 인 주인공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가해자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일상의 악(惡) 을 발견하고 지적하는 것이 보는 자의 몫인 것이다. 아 밀리에 노통의 소설을 소제목에서 인용한 까닭이다. 좋은 작품의 무대화(舞臺化)를 보는 것은 언제나 신 비롭고 깊은 사색의 기회를 준다. 생(生)의 부조리를 발견하고, 따뜻한 반성과 관조(觀照)를 통해 자신을 살피는 것은, 모든 예술작품의 감상이 주는 효과와 채 찍질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갑오년을 보내고, 을 미년 새해를 맞아 가볍지만은 않은 공연을 한 편쯤 관 람하시기를 권해 드린다.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