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법무사 2월호
78 이 규 환 법무사(서울중앙회) 채식주의자 주인공의 분열적 내면 한국 문단을 새롭게 이끌어 가고 있는 대표적인 젊은 여류 작가 한강(1970년생)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보면서 꿈과 현 실 세계를 다시 생각해 본다. 이 작품은 「채식주의자」, 「몽 고반점」, 「나무 불꽃」 3편을 엮 은 연작 소설로, 표제작 「채식 주의자」는 주인공 영혜가 성장기에 경험했던 폭력들 이 악몽으로 되살아나 ‘신경성 거식증’이라는 정신분 열증세로 채식주의자가 되면서 결혼 5년차 평범한 가 정주부의 삶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그린다. 2005년도 제29회 ‘이상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몽고반점」에도 영혜가 등장한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영혜의 형부는, 어느 날 갑자기 다리와 백화점이 무너 지고 수많은 군중들이 슬픔에 잠겨 오열하면서 온통 장례식장으로 변해가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마모 되고 찢긴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비디오 이미지로 담 아내는 작품을 기획한다. 이 작품에서 발가벗은 두 남녀는 몸에 물감 칠을 하 고 난교하듯 관능적인 춤을 추게 된다. 형부는 작품의 여자 모델로 아직도 엉덩이에 푸른 몽고반점이 남아 있는 영혜를, 남자 역에는 그와 함께 일한 동료 스타 일리스트를 선택한다. 작품을 위해 두 사람은 마치 물 밖으로 던져진 물고기처럼 서로를 탐닉하며 쉴 새 없 이 파닥거린다. 성공적으로 작품 촬영을 마친 뒤 충동 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형부는 심한 갈등과 곡절 끝에 자신이 직접 영혜와 극적인 섹스에 도달하게 된다. 이 작품을 통해 한강은 비디오 아티스트가 추구하 는 탐미와 관능의 세계를 단순히 벗은 여체에 대한 성적 욕망이나 예찬으로 그치지 않고, 고도의 미적 감각으로 승화하고 여기에 환상적인 이미지와 예술적 고뇌를 가미하여 인간이 추구하는 쾌락의 극치를 섹 슈얼리티하게 보여주었다는 문학적 평가를 받았다. 마지막 「나무 불꽃」에서는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 두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다. 영혜와 같이 등장 인물들 모두가 미쳐가고, 결국 그 끝에서 죽음에 이 르게 된다는 것이다. 태초 인간은 육식으로 삶을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불가피하게 채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나, 인간이 스스 로 만들어 놓은 제도의 덫에 걸려든 현대인들이 결국 ‘섹스’라는 본질적 욕망으로 귀의하여 그 덫에서 벗 어나려 하는 집요한 몸부림은, 어쩌면 우리가 밤마다 꾸는 꿈이거나 모순된 욕망들로 꽉 채워진 한 편의 부조리극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 제목에서 나타나듯 영혜가 ‘채식’이 아니라 ‘채식주의자’라 하는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프란츠 카프카(유대계 체코인, 1883~1924)는 그 의 책 『꿈』에서 “꿈은 생리적으로 과다수면증이거나 불면증에서 꾸는 것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가상세계 가 아니라 현실세계”라고 말한다. 반쯤 잠든 상태에 서 현실과 또 다른 여러 의식들이 찾아와 함께 뭉쳐 진 일종의 환상이 꿈이라는 것이다. 법무사의서재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꿈이곧현실, 상처받은 현대인들의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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