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법무사 2월호

79 『 법무사 』 2015 년 2 월호 법무사의서재 잠과 불면 사이에 몽롱함과 명징한 각성이 서로 다 른 환상의 세계를 만들고, 이 세계를 마치 물고기처 럼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다 순간 절제된 의식이 과거 속에 가라앉아 있는 어느 체험을 포착하고 그것을 현 재화하여 그 주제와 장면들을 서로 예측하고 생명을 부여해 나가는 그것이 바로 ‘꿈’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이 소설에서 영혜는 특별한 인물로 비쳐지지만 실 은 우리 현대인들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또 다른 나의 모습, 우리의 자화상인 것이다. 영혜와 그 형제들은 모두 월남 참전 용사인 아버지의 폭력을 경 험하며 자라지만 영혜만은 폭력이나 압박을 외부로 발산하지 못하고 체념하면서 영혼 속에 차곡차곡 쌓 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성격의 영혜는 축성리 정신병동에서 미쳐가면 서 물구나무서기 행동을 되풀이 하는데, 이는 두 발 로 서고 걷는 현대인들의 실상을 기존의 상식에 반한 다 하더라도 그런 시선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준엄한 경고이기도 하다. 영혜의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도 결국 우주운행의 질서와 다름없이 순환하고 되풀이되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 과연 어디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돌아서야 할 그 시간과 지점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피할 수 없는 선 택을 압박하는 물음이다. 지금 영혜 자신 앞에 죽어 가는 사람은 영혜가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자궁에 폴립이 자라 선혈을 쏟아내고 있었던 「나무 불꽃」의 화자인 언니 ‘인혜’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도 의미심 장하다. 등장인물들의 꿈속으로 좀 더 들어가 보자. ‘어두운 숲이었어. 계곡을 건너 어느 헛간 같은 밝 은 건물을 발견했어. 거적때기를 걷고 들어간 순간 수백 개의 커다랗고 시뻘건 고깃덩어리들이 매달려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거야. 끝없이 고깃덩 어리를 헤치고 나아갔지만 출구는 나타나지 않았고, 입고 있던 흰옷이 온통 피에 젖어 버렸어. 어떻게 거 길 빠져나왔는지 몰라. 무서웠다. 아직 내 옷에, 내 손에, 내 입에 피가 묻어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내가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 먹으며 내 잇몸과 입천장 에 물컹한 날고기를 문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 「채식주의자」 중 ‘언니, 내가 물구나무 서 있는데, 내 몸에서 잎사 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 땅속으로 파고 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응,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 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인혜의 아들 지우도 꿈을 꾼다. ‘…엄마 사진이 바 람에 날아갔어, 하늘을 봤더니, 응, 새가 날아가고 있 었는데, 새한테서 ‘엄마다…’ 소리가 들렸어. 응, 새 몸에서 손이 두 개 나오구.’ - 「나무 불꽃」 중 우리는 잠이 없는 하얀 밤이나 꿈이 없는 까만 밤, 어수선한 꿈으로 지새우는 어지러운 밤들을 일상처 럼 맞이하곤 한다. 프란츠 카프카나 한강 역시 꿈이 곧 현실세계라 하지만 꿈은 우리가 소망하는 이상세 계가 변이된 다른 환상일 수도 있다. 이 밤에도 사람들은 숱한 꿈들을 꾸고 있을 것이 다. 판도라 상자인 꿈, 새봄이 오면 사람들은 새 희망 에 부푼 나머지 더 많은 꿈들을 꾸게 될 것이다. 현대 인들이 이상향에 더 가까워지기를 이 봄에 꿈꿔 본 다. ▲ 영화 채식주의자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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