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법무사 3월호

74 정 우 진 법무사(광주전남회) 과거 조상들이 농경사회를 살면서 음력 정월은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서 그 해를 설계하고 그 해의 운 세를 점(占) 쳐보는 중요한 달로 여겨왔다. 그 정월의 대보름에는 특히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많은 세시 풍습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음력 보름은 정월 대보름, 칠월 백중, 팔월 한가위 와 함께 큰 명절로 여겼는데, 보름 중에서도 정월 대 보름을 제일 으뜸이었다. 설날이 가족 또는 집안의 명 절이었다면, 정월 대보름은 마을의 명절이었다. 온 동 네사람들이 함께 모여 줄다리기나 다리밟기, 고싸움, 쥐불놀이, 탈춤놀이, 별신굿 등 마을의 안녕을 비는 행사를 치렀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온가족이 옹기종기 둘러 앉아 한 해의 건강을 빌었고, 해 뜨기 전에 일어나 경 쟁적으로 “내 더위 모두 사가라”고 외치며 여름 더위 를 염가세일(?)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귀를 밝게 하는 ‘귀밝이술’과 부스럼 등 피부병 예방을 위한 ‘부 럼’을 깨기도 했다. 정월 대보름은 우리 세시풍습에서 설날만큼이나 의미가 깊은 날이었다. 대보름날 저녁에는 점풍(占豊) 을 위해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절을 하며 한 해의 소원을 빌었다. 요즈음은 보기 힘들지만 짚으로 만든 달집에다 불을 붙이는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 불 놀이도 함께 했다. 불놀이는 분유 깡통에 구멍을 뚫어 돌렸는데, 불장 난을 많이 하면 밤에 오줌 싼다고 놀리던 어른들의 농 섞인 말씀도 아련하다. 한꺼번에 불이 잘 타면 풍년이 들고, 타다가 꺼지면 흉년이 든다는 속설도 있었다. 동네 어른들은 춤을 추고 환호성을 지르며 신나게 풍물을 울렸다. 마을과 마을, 집집마다 지신(地神)을 밟는 ‘지신밟기’를 통해 잡귀를 쫓고 연중무사 복이 깃 들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정월 열나흘 날은 저녁을 일 찍 먹었고, 밥상은 풍성한 각종 나물과 무친 찬으로 채웠다. 그리고 보름날에는 나무도 아홉 지게, 밥도 아 홉 그릇을 먹으면서 한 해의 풍요와 건강을 빌었다. 온 집안에 등불을 켜놓고 밤을 지새우는 풍습도 있 었다. 보름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해 서 가족 중에 누군가 장난삼아 밀가루 등으로 눈썹을 하얗게 칠하기도 했고, 이른 아침 귀밝이술로 청주를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밝아지고 귓병도 생기지 않 으며 1년 동안 좋은 소식만 듣는다고 믿었다. 우리 선조들은 달이 초승달에서 차차 커져 보름에 만월이 되고 다시 작아지는 것을 곡식과 연관지어, 씨 를 뿌리면 싹이 자라서 여물고 다시 씨로 돌아가는 원리와 같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달은 풍요와 다산 을 상징하였고, 농사를 시작하는 첫 달이 가득 차는 정월 보름을 대명절로 여기며 한 해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했던 것이다. 농경 공동체가 아직 살아있던 예전에는 세밑에 선 물 보따리를 들고 자식을 앞세워 고향에 계시는 부모 를 찾아 세배를 올리고, 동네 어르신에게 양말이나 담배를 사들고 찾아가 객지생활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긴 하지만, 아직도 동네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대보름의 세시풍습은 여 전히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정월대보름의 추억과세시풍습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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