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법무사 4월호

78 인문학의창 이것은 마치 수레를 끄는 당나귀 코 앞에 당근을 매달아 두면 당나귀는 그 당근을 먹으려고 마구 내달 리지만, 아무리 달려도 당근을 먹을 수 없는 것과 같 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인간은 자기를 따라갈 수 없는 존재’라고 하였으며, ‘인간이란 무익한 헛수 고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사르트르는 신이 존재한다면 ‘즉자존재(卽 自態라고도 한다)’로서든가, 아니면 ‘대자존재(對自態 라고도 한다)’로서든가 해야 할 것인데, 만일 즉자존 재라면 신은 존재의 충만성이나 완전성을 소유하게 될 것이지만, 그의 의식이 박탈되어 모든 합리적인 행 동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만일 의식적이며 인격적인 존재라면, 인간과 다름 없는 하나의 대자존재가 되어 그 존재의 공허를 메우 려고 여기 허망하고 불가능한 목적에 대한 부질없는 열광적 요구에 사로잡혀 애만 쓸 것이 아닌가? 그것 은 신답지 않은 일이다. 그리하여 그는 “신은 없다. 신 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3) 본질에 앞서는 실존 사르트르는 “인간은 안에도 밖에도, 그것에 매달 릴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다. 사람의 마음 안팎에 있 는 것이라고는 무(無)뿐이다. 그러기에 사람은 거리낌 없이 절대적으로 자유롭다. 이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은 이것 또는 저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안에 전율하면서 자유를 행사하고, 그 책임을 자기 자신이 지는 것이다. 이것 이 곧 실존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실존은 구체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 는가? 첫째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것이요, 둘째는 “실존은 주체성”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첫째 논제 에 대하여 살펴보자. 그에 의하면, 모든 대상 곧 사물 은 그것을 구상하여 만든 사람의 의도에 복종한다. 예컨대, 목수가 책상을 만들 경우, 먼저 책상의 형 태를 고안하고 여기에 일정한 나무로 일정한 크기의 책상을 만든다. 미리 정해진 일정한 설계에 따라 그 책상은 만들어졌기 때문에, 즉 만들어지기 전부터 그 책상은 목수의 머릿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본질이 그 사물의 실제보다 앞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는 어느 누구도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한 인간을 보면, 그 인 간은 순간순간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정을 내려서 행 동한다. 그 인간이 잠시 후에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따라서 미리부터 그의 본질을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단지 그가 행한 행위에 의해서 그의 본질을 말할 뿐이다. 인간은 우선 실존하고 난 후에 본질이 있는 존재다. 그러므로 인간의 경우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로부터 인간의 본질을 미리 생각하 고 규정해서 만들어낸 존재, 곧 ‘신’은 없다. 신이 존 재하다면 그리고 신이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만들 었다면, 인간은 신의 의도를 따를 것인데, 그렇지 않 고 순간순간의 행동을 자신이 창조해 나가고 있는 것 이다. 인간은 원래 ‘무’에서 밖으로 나타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무’, 곧 아무 것도 아니기 때 문에 도리어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것이라 한다. 대상은 결코 행동하지 않는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에 의해 자기 자신을 만들었기 때문에 곧 자유로운 존재다. 인간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자유만을 제외하고는 무엇 이나 자유 아님이 없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의 제1원리는 “인간이란 자기 스스로 만든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하여 결국 인간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만들고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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