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법무사 6월호

79 『법무사』 2015년 6월호 것을 의식하고 영원한 명성을 얻기 위해 죽음으로 돌진 하지만, 「오디세이아」에서는 일찍 죽는 것이 명성을 지 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굴욕을 견디고 살아남아 귀환하는 것이 진정한 명성을 얻는 길이라고 그려낸다. 생존과 귀환, 거기에 필요한 덕목인 인내와 절제, 그 리고 지혜를 강조한다. 운명의 무게를 견디기보다는 어 떻게든 주어진 조건을 헤치고 살아남는 데 그 핵심이 있고, 어떤 면에서는 매우 현실적이다. 이는 오디세우스가 저승 체험 중에 만난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에게 “죽어서도 왕 노릇을 하니 얼마나 좋 으냐?”고 묻는 장면에서 잘 나타나 있다. 아킬레우스 는 “죽어서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것보다는 살아서 아 무 재산도 없는 사람 밑에서 종살이를 하는 게 더 낫 다”고 말한다. 2) ‘영웅’ 아킬레우스와 ‘反영웅’ 오디세우스 「일리아드」는 영웅을 기리기는 하되 영웅이 얻고자 하는 영광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도 아울러 보여준 다. 「오디세이아」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웅이라 는 전형에 부여된 윤리적 효력 자체를 문제 삼는다. 이 작품에서 주역으로 등장하는 오디세우스는 차라리 반 (反)영웅이라 해야 마땅한 인물이다. 그는 아킬레우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한미(寒微)한 집안의 출신으로 대규모 정규전의 사령관으로는 한계 가 있다. 그 대신 지모와 지략에 능해 야간 침투, 첩보 등의 장기를 이용해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곤 한다. 아킬레우스가 적군의 수장 헥토르와 정식으로 맞대 결하나 트로이 성의 함락이라는 최종 목적을 달성한 것은, 결국 은밀한 ‘트로이 목마작전’을 생각해 내고 주 도한 오디세우스의 공(功)이라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이처럼 끈질기게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 오디세우스에게서 우리는 보통 인간들의 전형적인 ‘귀 환 본능’을 확인한다. 인간은 먼 옛날부터 기본적으로 는 먹을 것을 구하러 집을 떠났다가 그것을 구해 집으 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전쟁터에서 명 예롭게 전사한 아킬레우스는 그에 비하면 덜 성숙된 젊은이일 뿐이다. 3) 무력 대신 지혜에 의존한 그리스문명 ‘호모 사피엔스’로서 인간은 거친 자연의 세계에서 근 육의 힘 대신 머리를 써서 남을 수 있었다. 아마도 「오 디세이아」가 호모 사피엔스 전체의 변치 않는 특징으 로, 서양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고전(古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문명이 새롭게 시작되는 시점에서 그리스인들도 지 난날의 영웅들처럼 낯선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는 것 을 명예롭게 여기지 않을 만큼 성숙해졌다. 오디세우스 의 일생이 문명의 스케일로 재현(再現)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문명을 계승(繼承)한 후대의 서양인들은 세계 의 대양을 누비고, 오늘날은 우주의 저 먼 곳까지 여정 을 늘려갈 생각을 하고 있다. 문제는 현대인들은 더 이상 오디세우스처럼 조심스럽 지 않다는 데 있다. 오디세우스가 고난을 통해 지혜로워 졌듯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도 그런 성숙이 필요하다. 더불어 이 작품은 ‘전후(戰後) 문학’이다. 이제 불멸 의 명성을 앞세웠던 영웅들은 트로이 전쟁에서 사라져 버렸다. 새 시대의 사람들은 참을성과 지모로써 살아 남아 무너진 집과 고향을 회복하고, 동시에 진실로 참 된 인간이 되기 위해 ‘고통을 견뎌야 하는 자신의 운명’ 을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헤아 릴 수 없는 많은 노고’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호메로스 인문학의 요체다. 당신의 운명 을 사랑하라. 그리고 다시 앞으로 전진하라! ■ 강대진의 강의(플라톤 아카데미 서양고전프로그램) ■『인문학 명강 서양고전』, 21세기북스, 강대진편 p159~177. ■ 이태수(인제대 석좌교수) 강의자료(조선일보, 중앙일보) ■『철학콘서트 3권』, 황광우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p15~40. ■『오딧세이』, 은문사 호메로스, 이상옥 옮김 참고문헌 인문학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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