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법무사 7월호
71 『 법무사 』 2015 년 7 월호 인문학의창 현존 최고본인 갑인자본은 1583년(선조16) 간행된 것 으로 여기에는 이이(李珥)가 쓴 「김시습전」이 붙어 있 다. 당시 국가에서 활자본으로 책을 내준다는 것은 국 가 공인의 의미였는데, 조선전기까지는 국가가 개인의 문집을 활자본으로 찍어낸 예는 거의 없었다. 선조는 김시습의 유고를 운각(芸閣), 즉 교서관에서 인쇄하라고 명령했고, 율곡(栗谷) 이이에게 김시습 일 대기를 담은 「김시습전」을 쓰라고 지시했다. 여기서 율 곡은 인생 중 절반을 승려로 살았던 그를 “겉모습은 승 려였지만 일생을 유학자로 살았다”는 유명한 개념을 표방했는데, 이 개념의 활용은 유학 이외의 이단을 따 랐던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테제가 된다. 『매월당집』의 총 23권 가운데 15권은 시집으로, 세 간과 궁궐, 자연 등 모든 분야를 소재로 다루었으며, 생로병사, 희로애락, 성명이기(性命理氣), 음양유현(陰 陽幽顯)에 이르기까지 다루지 않은 주제가 없다. 이 가운데 사유록(四遊錄), 즉 「유관서록」, 「유관동 록」, 「유호남록」, 「유금오록」과 같은 기행시는 세상에 대한 울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천하를 돌아다니던 청 년시절에 쓴 것으로, 특히 「관서록」 에는 강개시(慷慨 詩)가 많다. 「관동일록」에서는 김시습이 49세 때 농사나 짓고 살 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작정한 채 방랑의 길 을 떠나며 지었던, 높은 경지의 뛰어난 시들도 만나볼 수 있다. 후세의 시선집(詩選集)에 실린 작품들 대부분 이 바로 이 시기의 것들이다. 한편, 문(文)은 유가사상(儒家思想)을 펼친 논(論), 의(義), 설(說) 등이 대표적이며, 모두 ‘경국제민(經國濟 民)’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루었다. 논에는 「고금제왕국가흥망론(古今帝王國家興亡論)」, 「고금군자은현론(古今君子隱顯論)」, 설에는 「인재설(人 才說)」, 「생재설(生財說」, 의에는 「인군의(人君義)」, 「인 신의(人臣義)」, 「애민의(愛民義)」 등이 있다. 잡저(雜著) 에는 주로 도가(道家)에 대한 논문이 실려 있는데, 천 형(天刑), 북신(北辰), 성리(性理), 상고(上古) 등으로 나 뉘어 있다. 3. 『금오신화( 金鰲新話 )』, 현실과 꿈의 대립 『금오신화』는 한문 단편소설집으로, 「만복사저포기 (萬福寺樗蒲記)」,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취유부벽 정기(醉遊浮碧亭記)」,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 「용 궁부연록(龍宮赴宴錄)」 등 5편이 실려 있다. 김시습 스 스로 “돌방에 감추고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고 말했던 만큼 간본(刊本)은 없고 필사본만 전한다. 각 편들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이승과 저승, 현실 과 꿈 등 대립되는 두 세계에 속한 인물 둘이 만나는 구조로서, 현실과는 거리가 먼 신비로운 내용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전기소설(傳奇小說) 「전등신화(剪燈神 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생규장전」의 여주인공 최녀로 대표되는, 굳건한 기상과 의지를 지닌 한국적 인물들이 창조되어 있고, 공간적 배경을 조선으로 함으로써 주체의식이 드러나 있으며, 주인공들의 비극적 결말을 통해 작가의 기구한 처지가 투영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애민적(愛 民的) 왕도정치사상을 표출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김 시습의 독자적 창작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유가적 선비의 입장을 견지하던 주인공들이 불 교적 인연관이 투영된 만남을 통해 결국엔 죽음이나 부지소종(不知所終, 어디에서 일생을 마쳤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의 도가적 모습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점 에서, 유·불·도 3교를 두루 통하고 화합을 지향했던 김 시습의 철학체계가 잘 반영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매월당집(왼쪽)과 금오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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