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법무사 7월호

79 『 법무사 』 2015 년 7 월호 수상 위 글은 지난 2014년 12월 24일자 『조선일보』 A24 면에 실린 한양대학교 고전문학 전공의 정민 교수가 쓴 「세설신어(世說新語)」의 전문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나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왜 눈물이 흐르는가. 글 중 에 있는 다산과 그의 친구(?) 이중협의 이별 장면이 있 기 때문이다. 다산 선생은 헤어짐의 슬픔을 말하고 있는 이중협 에게 ‘만나서 기뻐하고 헤어져 슬퍼하는 것 모두가 인 간사이니 기쁘다고 너무 기뻐하지 말고 슬프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자’고 다독인다. 기쁨이 그 도를 넘치면 인 간이 천해지고, 슬픔 역시 그 도를 넘치면 몸을 망치게 된다. 그래서 적당히 기뻐하고 적당히 슬퍼하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다산 선생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쁠때는슬픔을생각하여기뻐하는마음이도를넘 지 않도록 조절하고, 슬플 때는 과거 기뻤을 당시를 생 각하여 너무 슬퍼하지 말자는, 그리하여 이것과 저것에 우왕좌왕하는처신을삼가야한다고, 인생선배로서다 산이후배이중협에게인생론을깨우쳐주는것이다. 마음은어떻게부려야하는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음을 어떻게 부려야 하는가 하 는 문제에 수도 없이 봉착한다. 기쁠 때는 소리를 질러 마음껏 기쁨을 알리고 싶고, 슬플 때는 펑펑 울고 싶기 도 한다. 그래야 속이 시원해져서 몸과 마음이 한갓지 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떠할 때 기쁘고 어떠할 때 슬퍼지는가. 친 구를 만나서 기쁘고 헤어지게 되어 슬픈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서 기쁘고 헤어지게 되어 슬픈가. 취직하여 기쁘고 실직하여 슬픈가. 승진하여 기쁘고 좌천되어 슬픈가. 부모님의 장수를 기리는 잔치를 할 때 기쁘고 돌아가셨을 때 슬픈가.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숱한 사연들을 만나게 된다. 그 사연들이 우리에게 주는 매듭들은 우리를 주춤거리 게 만든다. 기뻐서 춤추고 싶고 슬퍼서 주저앉고 싶을 것이다. 모든 사연을 만나 주춤거리는 그 길목에 우리 의 마음이 있다. 우리의 마음은 투명한 유리와 같아 매 듭의 상황을 여실히 반영한다. 마음의 창에 반영된 매 듭들은 대개 기쁨과 슬픔으로 이분되어 나타난다. 그러면 기쁨과 슬픔의 중간치는 없는 것인가. 기쁨이 빨간색이고 슬픔이 검은 색이라면, 그 중간치의 색은 없는 것인가. 다산 선생은 있다고 말씀하신다. 기쁠 때 는 슬픔을 생각하고, 슬플 때는 과거의 기뻤을 때를 생 각해 기쁨으로도 치우치지 말고 슬픔으로도 치우치지 말자고 한다. 다산 선생께서는 강진의 19년 유배생활 동안 초당과 그 주변을 걸으면서 숱한 기다림의 세월을 보냈을 것이 다. 한양의 아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렸을 것이고, 초의 선사를 기다렸을 것이며, 한양에서 오는 해배(解配)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을 것이다. 선생은 그 많은 기다림 속에서 기쁨과 슬픔의 순간 들을 만났을 것인데, 그 극과 극의 상황 속에서 독서와 저술(著述)을 하였고 제자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 선생은 기쁨을 억제하고 슬픔을 이겨 내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셨을 것이라, 이중협이 헤어짐 의 슬픔을 말할 때 기쁨과 슬픔의 중간치가 있을 수 있 음을 말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산은 “거센 물결과 잔물결이 섞여 물은 무늬를 이 루고 느린 각성(角聲)과 빠른 우성(羽聲)이 어우러져 음 악은 가락을 이루게 된다”고 일러줌으로써 우리 마음 에 기쁨과 슬픔의 중간 영역이 존재할 수 있음을 깨우 쳐 준다. 기쁨과슬픔도바람에흔들리는나무처럼 그러면 선생의 말씀 가운데 ‘섞임’과 ‘어울림’은 어떻 게 만들어지는가. 섞임과 어울림은 노력의 결과다. 요 즘 말로 하자면 ‘퓨전’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혼합(混 合)’이 아니라 ‘혼융(混融)’으로 풀어야 한다. ‘혼합’은 물리적 집합에 불과하지만, ‘혼융’은 화학적 변화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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