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법무사 9월호
79 『 법무사 』 2015 년 9 월호 (英祖實錄)」과 「폐세자반교(廢世子頒敎)」라는 글이 있 다. 「폐세자반교」는 영조가 사도세자를 세자의 자리에 서 끌어내리면서 직접 써서 전국에 알린 명령이다. 영조는 창경궁이 있는 휘령전(徽寧殿)에서 세자 폐위를 했는데, 그곳은 영조의 초비(初妃) 정성왕후(貞聖王后)의 사당이다.영조는그곳에서신하들에게이렇게외쳤다. “경들은 들었는가? 영혼의 소리를, 정성왕후가 지금 내게 변란이 호흡지간에 있다고 하지 않는가?” 임금이 들린다는데 신하들이 안 들린다고 할 수도 없고 들린다고 할 수도 없는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변란, 곧 반란의 주동자로 보았지 만, 딱히 증거를 말할 수 없으니 막무가내로 죽은 정성 왕후의 목소리를 갖다 붙인 것이다. 그러나 반란 혐의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영조실 록』, 『승정원일기』, 『폐세자반교』에도 없는 바, 아마도 정조가 의도적으로 뺀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 『한중록』의 고전적 가치 조선시대는 물론 현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텍스트 『한중록』은 정치·풍속사적 사료일 뿐만 아니라, 문 학사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아주 특별한 고전 (古典)이다. 애초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문학작품으 로 집필된 것은 아니지만, 후손에게 자신이 겪은 일들 에 대해 들려주고, 자신의 친정을 대변하는 마음으로 꾸밈없이 쓴 것이 장점이다. 『한중록』은 제한적으로 읽혀지다가 일제의 식민통 치가 시작되면서 세상에 흘러나와 광복 이후 국어교육 과 한글문학이 중요하게 여겨지면서 ‘고전’으로 자리를 잡고, 소설·무용·연극 등으로 개작되었다. 어떤책이고전이되려면여러사람들에게오랫동안읽 혀야하고, 또읽힐만한요소를갖추어야하는데, 『한중 록』은 ‘고전’으로볼수없다는평가를받기도한다. 그첫 번째이유는고전이라기엔비교적최근에발간됐다는것 이다. 1947년 가람 이병기(李秉岐) 선생이 『한중록 주석 본(註釋本)』을출간했으니고작 60~70년밖에안된다. 하지만 1968년, 『한중록』의 이본(異本)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UC버클리대학교는 자기 대학 도서관에 소장된 한국 고서에 대한 ‘해석 목록집’을 출간하면서 “『한중록』이 현대에 들어와서 고전의 반열에 오르려 하고 있다”고 논평한 바 있다. 두번째로 『한중록』에는일반적인고전이담고있는내 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사와 인간 의삶을이만큼적나라하고구체적으로보여준텍스트는 조선시대에는 물론 현대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특별한 의미를지닌고전으로서충분한자격이있다고본다. 바람 잘 날 없는 시련의 연속, 권력의 속성 깨우쳐 줘 혜경궁의 70여 년 궁궐생활은 말년 10년을 제외하 면 그야말로 바람 잘 날 없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밖으 로는 절대권력이었지만 속으로는 절대고통이었다. 혜경궁의 오빠, 홍낙인은 평소 “집을 보전하려면 음 직(蔭職)으로 주부나 봉사 따위의 하찮은 관직이나 맡 는 것이 복을 길이 누리는 것이니, 마마께서는 친정 잘 되는 것을 기뻐 마소서”라고 말했다고 한다. 혜경궁은 처음에는 이 말을 웃어 넘겼으나 훗날 집안이 몰락한 다음에 그 말의 진의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한중록』은 우리에게 조선왕실의 흐릿한 역사 몇 장 면을 조금 더 선명하게 해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겉이 화려한 절대권력의 이면에 인간적으로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 함께 할 수도 있다는 사실, 즉 권력의 잔인한 속살에 대해 일깨워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정병설강의(플라톤아카데미), 동양고전프로그램 ■ 『인문학명강』(21세기북스), p.6~35, p.148~174. (정병설편) ■ 『한중록』 (문학동네), 혜경궁홍씨지음, 정병설옮김 ■ 임현주석사학위논문(영남대학교교육대학원 2013. 2) ■ 기타 참고문헌 인문학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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