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법무사 9월호

81 『 법무사 』 2015 년 9 월호 없이 무너뜨린다. 처음에는 조금 지루하고 구체적인 풍 경묘사에 치중하느라 숨을 고르는 것처럼 여겨졌지만, 갈수록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흡인력 있는 서술로 한 자 한 자 놓치지 않고 집중해 따라가게 된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빅토리아 시대를 묘사하며 보여주는 작가의 능수능란한 해설과 시점의 전환이다. 역사 소설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정보의 나열과 여러 문예 사조, 특히 문학과 미술의 경향 소개와 비판, 특 히 매 장의 첫머리에 배치하는 경외와 극복 사이의 시 인들과 마르크스의 언명, 다윈의 해석 등은 파울즈의 작가적 역량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또,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찰스를 다루다가도, 사라나 다른 대상에 대한 묘사는 관찰자 시점으로 바뀌 기도 하고, 어느 순간은 작가 자신이 주변인물로 등장하 여 찰스와 눈빛을 나누고, 다른 인물을 집어넣어 찰스를 스쳐 지나가게 하는가 하면, 결말뿐 아니라 중간에도 다 른이야기의전개를암시하거나제시하기도한다. 더구나 그 재치 있고 빛나는 수사(修辭)라니! 우리말 로는 불가능할, 영어로만 가능한 그 표현들을 매끄럽 게 번역한 역자의 능력에도 박수를 보낸다. “~여자”라 는 제목이 무색하게 사상서에 버금가는 다양한 예술과 시대에 대한 작가의 조망에 찬탄을 금할 수가 없다. 왜 이 책이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의 100대 영 문소설’에 포함되었는지, 읽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막바지의 한 대목을 소개하며, 파울 즈에 대한 존경을 대신한다. “우리도 인생에서 한두 번쯤은 누구나 그런 시선을 받거나 지어 보인다. 그 시선 속에서는 이 세계가 녹아 들고, 과거는 사라진다. 그 순간 우리는, 만세 반석이 란 결국 사랑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장 깊은 이해심 으로 깨닫게 된다. 지금 여기서 두 사람이 서로 손을 맞 잡고, 이 맹목적인 침묵 속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는 그 몸짓에 담겨 있는 가없는 사 랑이야말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반석임을 깨닫게 되 는것이다.” 이달의 Good Book!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 고미숙 저 / 북드라망 / 2012.8.31. / 240쪽 제도권 밖의 독립적 자생 학습공간인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공동 리더였던 저자는, 학교의 성적을 위한 공부와 책 읽기를 통한 내적 탐구를 구분하는 근대 적 교육의 이념과 한국의 병폐가 지금의 괴리, 불통, 각종 병리적 현상의 원인이 라고 진단한다. 후자가 그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쿵푸(Kung-fu), 즉 공 부(工夫)다. 눈으로 읽기가 아닌 암송과 구술이야말로 몸과 지식이 전일하게 함께하며 함께하는 이의 소통을 촉발하는 진정한 공부이며, 학번과 정해진 과정 안에서 기계적으로 분리된 단계적 학습을 하는 것과 상관없이, 인생과 우주의 의미를 탐구하며 모든 분야의 지식을 통섭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건강하게 하고 능동적으로 참여, 사고하게 한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떠나 공동체로서 함께 밥을 지어 먹 고 공부하는 것의 즐거움과 전공을 떠나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리는 자발적 공부가 주는 묘미는 학위와 상관없이 모두 에게 환희를 안겨주는 귀중한 경험일 수 있다. 사랑도, 성도 공부와 연결된다. 이런 면에서 저자의 최근 작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와 연결해 읽는 재미 도 쏠쏠하다. 그녀가 이끌고 있는 인문 의역학연구소 ‘감이 당’에 합류해 함께 공부하고 싶은 기회를 엿본다.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이강룡 저 / 유유 / 2013.3.4. / 268쪽 단언컨대 번역자의 길을 걷지 않는 일반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글들이다. 특히나 문장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 람이라면 꼭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저 자의 오랜 동안의 우리말 사랑과 끊임 없는 자료 수집, 실례를 들어 설명해주 는 성실함 등을 보면 훌륭한 전문가임 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법무사의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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