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법무사 10월호
23 『 법무사 』 2015 년 10 월호 그러자 다음날 두 명이 찾아 왔다. 한 명은 그 회사 의 대표이사였고, 또 한 명은 중앙일간지 기자라며 명 함을 건네주었다. 회사의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살펴보니 본점이 ○ ○대학교 내에 있었다. 대표이사는 자기 회사가 벤처기 업으로 인증을 받았다고 하면서, 이미 10억 원 가량의 투자를 받았고, 이번에 새로 3억 원을 투자받을 예정 인데, 필자의 사무실에서 투자자와 만나기로 했으니 잘 처리해 달라는 것이었다. 조금 지나자 투자자가 사무실로 찾아왔고, 넷이서 신주발행과 관련된 서류를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투 자자가 투자금 수표를 건네주기 일보 직전에, 대표이사 가 투자자에게 회사의 자본금이 보관되어 있는 ‘잔고 증명서’라면서 서류 하나를 보여주었다. 필자가 얼핏 보니, 은행의 서류라기에는 너무 조잡 해 보였다.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대표이사에게 “이게 은행에서 발행한 잔고증명서가 맞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은행 지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필자를 바꿔주면서 확인해 보라는 것이다. 필자는 전화를 받 아 상대방 지점장의 이름 등 여러 사항을 물은 후에 전 화를 끊었다. “조금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 하고 그 은행에 수년간 근무했던 적이 있습니다. 현재 그 지점에는 제 동기가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손 님들이 보시는 앞에서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런 지점장이 근무하고 계신지, 이 잔고증명서가 그 은행에 서 발행한 것이 맞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필자의 말이 끝나자 회사대표라는 사람과 기자라는 사람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러더니 슬금 슬금 뒷걸음질을 쳐 도망을 치고 말았다. 황당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개인투자자도 가방에 수표를 챙겨 넣고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쌩~ 하니 사무실을 나가 버렸다. 모두가 사라진 후 요란스럽게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 기를 드니 방금 꼬리를 내리고 도망쳤던 두 사람 중 기 자라는 사람이었다. 용건인즉슨, 필자가 사무실에서 나오기만 하면 바로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이었다. 필자 는 바로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그런 기자가 있는지 확 인했지만, 당연히 그런 기자는 없었다. 다음날 필자는 본점 소재지로 되어 있는 대학교를 찾아가 주주라는 교수들을 만났다. 그런데 교수들도 그 대표이사에게 사기를 당했다면서, 그가 벤처기업 투 자 붐을 이용해 사기를 치는 전문 사기꾼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일 필자가 그 조잡한 잔고증명서를 보고 그와 같은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면, 그 투자자는 이후 골치 아픈분쟁의소용돌이에휘말렸을것이틀림없다. 이렇게 초기 법무사 시절에는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문제점을 파헤치는 패기가 있었는데, 이제 20여 년 법 무사 생활을 하고 나니 슬슬 칼날이 무디어진 것일까? 한 달 전쯤인가, 얼마 전 상장이 폐지된 회사의 대표 이사가 10여년 만에 사무실을 찾아와 경영권을 인수 한다고 해서 사건을 수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당사자들끼리 주식양수도 계약을 체결하면 서 대금은 전체 양수도 대금의 20%만 받고, 나머지 잔 금은 한 달 후에 받기로 하면서, 주식과 경영권(대표이 사 등 임원 전체가 사임하고, 새로운 임원을 선임함) 일 체를 넘겨주었다. 이후 결국 잔금을 치르지 못한 채 경영권만을 가져 간 양수인과 양도인 간에 지루한 경영권 분쟁이 일어났 고, 양수인이 회사의 현금에 손을 대면서 수 건의 형사 고발이 이어졌다. 필자는 이런 경영권 양수도는 100% 사기라는 사실 을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일을 처리하면 서 어떤 형태로든 양도인에게 그에 관한 경고를 해주지 못했다. 그것이 못내 자책감으로 남아 그 날 낮술을 먹 고 있었던 것이다. 양수도 계약에 따르는 위험 해소를 위한 절차 낮술의 기운을 뒤로 하고, 다음날 아침 출근을 했더 니 어제 연락을 했던 당사자들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실무포커스 ▹ 상업등기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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