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법무사 10월호

80 현대철학의사조와분파② 인문학의창 1. 쇼펜하우어의 생애 쇼펜하우어(A.Schopenhauer) 는 1788년 2월 22일, 독일의 단치히에서 부유한 상인 하인 리히 쇼펜하우어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탄생했다. 그의 부친은 고지식하고 몰취미한 추남이었지만, 19세에 결혼한 모친 요한나는 문필에 뛰어난 미모의 여류작가였다. 쇼펜하우어의 부친은 볼테르를 숭배한 자유애호가 로서 프러시아를 증오해 1799년 프러시아가 단치히를 점령하자 많은 손해를 보면서도 함부르크로 이주했다. 부친은 상업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아들인 쇼 펜하우어도 유능한 상인으로 키우고자 1797년(9세) 에 함부르크의 사립학교에서 직업교육을 받게 한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학자가 되려는 야망에 불탔다. ‘학자’와 ‘가난’을 동의어로 생각하던 부친은 이런 아 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가족의 유럽여행을 계획한 후, 쇼펜하우어에게 학자가 되겠다면 라틴어를 배워야 하 니 함부르크 집에 남아있고, 상인이 되겠다면 부모를 따라 여행을 가도 좋다는 제안을 한다. 어린 쇼펜하우어는 부친의 유혹에 못 이겨 상인이 되겠다고 약속하고, 1803년(16세) 봄, 가족과 함께 네 덜란드, 프랑스, 영국, 스위스, 오스트리아, 베를린, 단 치히를 두루 여행한 후, 1805년 초 집으로 돌아온다. 이후 아버지와의 약속대로 함부르크의 유명 상인에게 장사 일을 배웠으나, 자신이 그릇된 인생항로를 걷고 있다는 것을 통감하고 절망을 느낀다. 그러던 1805년(17세) 4월, 갑작스런 부친의 별세로 쇼 펜하우어는 큰 충격에 빠진다. 남편의 돈만 보고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했던 모친은 아버지가 사망하자 기다 렸다는듯이막대한유산을챙겨바이말로이사했고, 어 떤작가와사랑에빠져방탕한생활을계속하였다. 쇼펜하우어는 그런 모친에게 환멸을 느끼고 언쟁을 벌인 후 헤어져 살기로 하고, 정한 면회 날에만 찾아와 여러 손님 틈에 끼어 모친을 만났다고 한다. 1809년(21 세) 9월, 성인이 된 쇼펜하우어는 모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부친재산의 3분의 1을받고, 모친과결별한다. 한편, 그 해 쇼펜하우어는 10세 연상의 여배우와 결 혼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32세 때는 극장의 합창대원 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가 39세 때 상인의 딸과 다시 결혼하려 했으나 역시 실패한다. 연이은 실연과 모친과 의 불화로 인해 그는 ‘여자가 곧 불행의 근원’이라는 생 각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곧 여자에 대한 불신, 나아 가 자신을 포함한 인간 자체에 대한 불신에까지 이르 게 된다. 그래서인지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부친 사망 후 그는 부친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상인 견습을 계속했으나 고뇌만 깊어질 뿐이었다. 그러다 2 년 후인 1807년, 함부르크의 중고교에 입학,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에 열중해 2년 반 후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다른 학생들과 어깨를 겨루 는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 생의철학 (2) 쇼펜하우어, ‘연민과동정’ 이도덕의기초! 최 진 태 법무사(대구경북회)·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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