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인문학의 창 학에 있어 피히테와 세링, 헤겔을 비판하였으나, 자신의 철학 또한 독일 관념론의 범주를 탈피하지는 못하였다. 그는 인식의 대상을 현상세계에만 한하고, 인식이라 는 것은 감각이 오성의 범주에 의하여 배열되었을 때 생기는 것이며, 통상적으로 감각만으로 얻어진다고 생 각하는 직관 또한 오성의 소산이라고 보았다. 그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는 공간과 시간의 제 약 아래 있는 것이고, 또한 인과율에 의해 지배되고 있 는 것으로서 이성(理性)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보 았다. 그러나 이것은 참다운 실제가 아니라 표상에 불 과한 것, 환언하면 우리들의 감각에 의해 인식하는 것 은 표상뿐이라고 하였다. 그는 감각에 의해 인식할 수 없는 세계, 즉 형이상학적 실재가 있다고 보았다. 그 형이상학적 실재는 공간, 시간, 인과성의 형식에서 해방되어 있는 ‘의지(Wille)’이며, 이 의지는 천재적 직관을 통해서만 인식되는 것이라 하였다. 2) 의지의 세계 그에 의하면 형이상학적 실재인 의지는 의식적이며 합목적적인 이성이 아니라, 무의식적이며 비이성적인 ‘맹목적 생존의지(blinder Wille zum Leben)’다. 이것은 인과성에 지배되지 않는 것으로서, 생물 또 는 무생물은 모든 만물의 유일한 본질이다. 환언하면 우주만물은 생성 소멸하는 개체들과는 무관하게 끊임 없이 활동하는 맹목적 생존의지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개체의 차별은 시간 및 공간 속에서만 준비하 는 것이니 시·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만물은 하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즉, 근본에 있어서 오직 하나인 의 지가 여러 단계의 보편적 의지로 전개되어 이것들이 경험 세계에서 개별화 되어 현상계를 이룬다. 사람도 외면적 으로 보면, 다른 존재들과 동일하게 표상을 띠고 있다. 그 러나 내면적으로 보면 의지의 활동이요 또한 표현이다. 신체 하나하나의 동작은 의지의 작용이 직접 객관화 해서 나타난 것이다. 소화기관은 식욕을, 성기는 성욕 을, 눈은 사물을 보려고 하는 의욕을 각 객관화한 것이 다. 이와 같이 우리는 맹목적 생존의지를 신체의 활동 을 통해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이러한 의지는 그 최하의 것에서 최상에 이르기까지 정연한 단계를 이루고 있다. 의지는 무기계(無機界)에 서는 자연력(중량, 액체, 전기 등)의 모습을, 유기계(有 機界)에서는 종족보존의 모습을, 그리고 인간계에서는 개인의 본유적 성격의 모습을 띠고 있다. 이러한 각종 의지의 근원적인 형상, 즉 공간·시간·인과성에서 해방 된 사물의 영원한 원형을 ‘이데아’라고 하였다. 3) 염세주의(厭世主義) 인생을 지배하는 것도 맹목적 생존의지다. 이러한 의지는 쾌락 또는 행복을 얻으려고 의욕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욕은 무한하기 때문에 항상 그 수요는 충족 될 수 없으므로 고통이 생기게 마련이다. 어떤 욕망이든 충족되고 나면 다시 새로운 욕망이 나타나게 마련이고, 어떤 고통도 그것을 벗어나거나 적 어도 벗어날 정도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는 어느덧 불 행이 따르게 마련이다. 맹목적 생존의지에만 지배되기 마련인 인생은 필연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고통이야말로 삶의 실재이며, 쾌락이나 행복은 이 고통이라는 정상상태에서 가끔 벗어나기 때문에 나타 나는 하나의 변형된 형태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고뇌를 제거하려고 무한히 노력하여도 결국 얻는 것은 고뇌의 형태를 변경한 데 불과하다고 본다. 고뇌는 애초에는 결핍과 필요, 즉 물질적 생활에 대한 걱정이라는 형태에 불과하다. 사람이 애써 고뇌를 축출 하면 그것은 순식간에 변모되어 여러 가지 형태, 즉 사 랑, 성욕, 질투, 선망, 증오, 탐욕, 질병 등으로 나타난다. 만약 이것들이 침범할 여지가 없으면 권태와 포만이 라는 형태로 다가온다. 이것을 떨쳐 내려면 애써 투쟁 해야 하고, 설사 떨어졌다 하더라도 또 다시 다른 형태 로 변모하여 역방향으로 시작된다. 인간의 이같은 필연 적 고통에 대하여 그는 “이 세계의 고통스러운 박물지동기 없는 욕망, 그리고 끊임없이 다가오는 고뇌와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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