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법무사 10월호
『 법무사 』 2015 년 10 월호 85 법무사의독서노트 계의 흐름과 전쟁이라는 폭력이 낳는 커다란 문화적 변 화라는 것에 대한 별도의 시각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청교도들이 무조건 금욕주의적이지 않았고, 예의범 절을 강조하는 하나의 흐름과 그 반대로 자유와 방종· 쾌락을 외치는 반항이 공존해 왔다는 것, 그리고 미국 이라는 나라의 태생적 콤플렉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이어져 오는 자유와 표현에 대한 관용과 자 부심 등도 조금은 이해를 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기억에서 없어지기 전에,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구한말로부터 현대까지의 어휘의 변화를, 이 처럼 문명사적 흐름과 함께 잘 엮어서 조망하는 책이 나올 수 있으면, 그럴 토양과 지적 축적이 있었으면 하 는 욕심이 든다. 개인(個人, Individual), 참 어려운 말이다. 이 사회 는 개인적일까? 개인주의 적일까? 충분히? 『개인이 라 불리는 기적』의 박성현 저자는 아니라고, 한참 멀 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더 욱 더 개인에 대한 추구가 깊이 있게 행해져야 한다고 갈파한다. 이 개인의 대립항이라면 ‘전체주의’라고 할 때의 ‘전 체,’‘집단주의’의 ‘집단’일 텐데, 저자는 이를 편하게 ‘떼’ 라는 개념으로 놓고 깨부수기를 시작한다. 니체의 사 상을 자주 인용하며, ‘사회의 구조가 인간을 구원한다’ 는 개념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질타한다. 개인의 자유 의 완성, 내면 탐색을 통해 자아와 세상 사이의 간극, 그 줄타기를 대체할 수 있는 시스템이란 건 없다. 이 사회는 개인의 욕망을 ‘탐욕’이라고 치부하며 경 원시하는 이중성을 보이는데, 참된 개인은 자신과 세 계 사이의 긴장을 다른 누구의 시선으로 치환하려 하 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서 자신에게로 관통하는 독 립적인 자아로서 대한다. 이런 시각을 바탕으로 필자는, 대한민국의 특수한 상황을 직시한다. 우리는 서구 열강의 제국적 침략주 의, 대량학살, 피의 숙청의 연속이었던 혁명 등 업보를 가지지 않았으며,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시장자본주의 의 민첩성을 습득해 가고 있다. 자부심과 희망을 가지 고 성숙한 개인주의의 세계로 나아가자…. 기본으로읽어야했던키에르케고르를제대로읽지못한 것을 반성하게 된다. 그의 사상의 혁명성도 루터의 종교개 혁에맞먹는것이었음을알고,꼭정독하기로마음먹는다. 필자가 ‘후스 200’이라 칭한, 르네상스로부터 칸트 의 종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프랑스혁명 및 러시아혁 명에 대한 고찰 등은 산발적이고 피상적이었던 세계사 적 지식의 단순함을 어김없이 지적해 주었다. 동서고금 을 넘나들며 보여주는 사실에 대한 해석의 깊이는 놀 라운 지적 촉발을 이끌어내 주었다. 그러나 결론에 이르는 필자의 논조에도 무리한 도약 이 있었지 않나 생각한다. 그의 다른 책들도 읽어 보 고, 아직 소화도 되지 않았으니 더욱 곱씹어 보아야 하 겠지만, 전체주의적, 폭력적 역사의 미화에 대한 비판 까지는 좋으나, 거기서 갑자기 우리나라 현 상황에 대 한 지나치게 긍정적인 해석, 자본주의적 시장 예찬으 로 나아감에는 조금 억지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좌파에서 우파로 돌아선(?) 필자의 독특한 이력, 어 느 부분을 방증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실 존을 걸고 할 말을 제대로 했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으 며, 개인의 찬양이 섣부른 이기주의의 합리화가 될 수 없음도 공감한다. 더 고민하고 나의 생각으로 삼을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박성현의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구조가 개인을 구원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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