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법무사 11월호

80 인문학의 창 인문학의 창 ◆ 철학자 플라톤과 「국가」의 기원 “공화국을 만드는 우리의 목적은 특정계급이 행복한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가장 큰 행복을 누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있다.” - 플라톤의 「국가」 중에서. 철학자 플라톤 (B.C. 427~347)은 철인에 의해 통치되 는 정의로운 국가 를 꿈꾸었다. 그가 그린 철인과 국가의 모습에는 지혜와 용 기, 그리고 절제를 한몸에 구현한 정의 의 화신, 바로 스승 소크라테스의 모습 이 깃들어 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무고한 죽음을 당한 후, 현 실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인생의 방향을 바꾼다. 미친 듯이 심장을 뛰게 했던 스승의 강연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자 정치가의 길을 접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 른 삶인가?’에 대한 진지한 탐구를 시작한다. 20세에 소크라테스를 만나 사상에 눈 뜨고, 30세에 세상을 유랑하며 견문을 넓혔던 그는 소크라테스 사후 14년이 되던 불혹의 나이에 아테네의 숲속에 ‘아카데미 아’를 열고 평생을 그곳에서 철학자로 살았다. 플라톤은 이 아카데미아에서 소크라테스를 주인공 으로 한 많은 대화편의 저술을 남기는데, 그 중에서 제 자들과 함께 ‘정의’에 대해 사유하며, ‘국가’의 차원으로 까지 그 지평을 확대해 나간 저서가 바로 「국가」이다. 전술했듯이 플라톤이 정치를 멀리하게 된 이유는 플 라톤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사실 아무런 저술이 없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소 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고 그가 좋아했던 말일 뿐이 다. 그는 아주 정직한 사람이어서 자신을 알라는 말에 충실하게 자신을 검토해 본 결과, 사실은 자신이 제대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을 정도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공자나 예수, 부처처럼 설법을 하러 다니지 않았고, 특별한 가르침을 준 적도 없다. 그 냥 정직한 사람인 그가 70세 나이에 사형을 받고 처형 되고 만다. 플라톤은 바로 이 사건, 즉 그가 왜 죽었으 며, 그를 처형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는지를 알리는 데 청년시절부터 80세까지의 평생을 보낸 것이다. 철학자 윌 듀란트는 저서 『철학이야기』에서 「국가」에 대해 이런 헌시를 바친다. “대화편 중에서 가장 훌륭한 「국가」는 플라톤의 사 상 전체를 한 권에 집약하고 있는, 그 자체가 완전무결 한 논문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그의 형이상학, 신학, 윤 리학, 심리학, 교육학, 정치학, 미학을 볼 수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플라톤의 「국가」 이 상 진 법무사(서울중앙회)·본지 편집위원·법학박사 ▲ 철학자 플라톤 두상.

RkJQdWJsaXNoZXIy ODExN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