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법무사 12월호

76 현대철학의 사조와 분파 ③ 인문학의 창 ◆ 과정철학 사조의 시조, 베르그송의 생애와 사상 1. 생애 베르그송은 1859 년 10월 18일, 파리에 서 음악학교 교사인 미셀 베르그송의 4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 났다. 그의 부친은 음악 공부를 하기 위하여 독일에 유학해 나중 에는 제네바의 음악교사가 되었으며, 내성적이고 근면 하며 신앙심에 불타 있었다. 베르그송은 1868년(9세)에 콩르세중학교에 입학하 였으며, 전국 경시대회에서 라틴어, 프랑스어, 논문, 수 학 부문 일등을 하였다. 1878년(19세)에 고등사범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였으며, 학교 시절에는 수학이나 물리 학에 흥미를 가졌다. 철학공부는 등한시 하였으나 그 후 스펜서의 『제일원리』를 읽고 크나큰 감명을 받았다 고 한다. 그는 친구를 사귀지도 않았으며 조용히 혼자서 명상 하고 학업에만 전념하였다. 당시의 동급생 중 콩트 이 후 프랑스 사회학을 재정립한 뒤르켐(Durkheim)과 훗날 세기적 웅변가로 프랑스 사회당을 창당하여 노동 자계급을 위하여 활약하던 중 극우파에 의해 암살당 한 조오레스 등이 있었다. 조오레스는 낭만적인 웅변 가인 반면, 베르그송은 이성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이었 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잘 이해해 친해졌다고 한다. 1881년(22세)에는 시골에 있는 앙제중·고교에서 철 학교사로 일하다가 1883년 브레즈파스칼중·고교에서 5년간 근무하였다. 1888년(29세)에는 파리의 롤랭중· 고교로 전근했고, 1889년에는 「의식의 직접여건에 관 한 시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장소론」을 제출하여 박 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892년(33세)에 루이스 뇌비르제와 결혼하였고 앙 리4세중학교로 전근하였다. 이때 소르본대학의 철학 과 전임교수 채용에 지원하였으나 좌절되었다. 1896년 (37세)에는 「물질과 기억」을 쓰고, 1900년에는 콜레쥬 드 프랑스의 철학교수로 나갔다. 이곳은 파리 소재 고 등교육기관으로 누구나 강의를 청강할 수 있고, 시험 도 학위수여도 없는 학교다. 이곳에서 그는 처음에는 그리스철학을, 훗날에는 현 대철학을 강의하였는데, 그의 강의는 청강생들을 감 명시켜 크게 인기를 얻었고, 강의실은 언제나 초만원 을 이루었다고 한다. 1901년(42세)에는 도덕정치학회 회원으로 선발되었고, 1903년에는 「형이상학서설」을, 1907년에는 「창조적 진화」를 집필하였다. 「창조적 진화」는 각국에 번역 소개됨으로써 국제적 생의 철학 (3) 베르그송, 세상의 본질은 운동, 변화, 진화! 최 진 태 법무사(대구경북회)·법학박사 ▲ 베르그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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