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법무사 12월호
81 『 법무사 』 2015 년 12 월호 법무사의독서노트 현대 프랑스 소설들의 서사성, 장점이자 단점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한국적 문학의 의미층 안 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누구 도 그를 사실주의 작가라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상상력으로 버무려진 갖가지의 습 작 노트를 연작의 소재로 쓰는 능력이 주는 매력 이 있다. 약간 만화적이거나 동화적인 유치한 상상에서 비롯된 글쓰기가, 하나의 체계를 이루면서 ‘타나토 스(Thanatos ; 죽음(의 신)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의 세계로까지 향해 가고, 인류의 진보와 다른 존 재와의 공생을 꿈꾸는 일관된 주제의식은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세계 50대 작가, 100대 작가 또는 그런 작품을 꼽으라고 할 때는 그나 그 의 소설이 거론되지는 않을 것 같다. 마르께스나 보르헤스의 환상적 사실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의 판타지와 SF적인 특성이 주는 재미는 분명히 있긴 하지만, 그것이 현실의 인간 세계에 대한 풍자 와 도전으로 읽히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기발하기는 하지만, 문학의 본류라 할 수 있는 인간 존재나 실존의 심연까지 건드린다고 보기에 는 역부족이랄까? 이를테면, 서사는 있되 서정과 성찰은 부족하다는 진단을 내리는 게 그에 대한 지 나친 폄훼(貶毁)는 아니길 바란다. 사실 현대 프랑스 소설의 경향은 일본 경우의 약 간과 마찬가지로, 극도의 서사성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장점 내지 단점이 있는 듯하다. 누가 누구와 사랑에 빠진다, 그들 앞날에 큰 시련이 닥 친다, 나름의 서스펜스를 뚫고 악을 응징하며 그 들은 열정적인 키스 내지 섹스에까지 다다른다, 그 와중에 가족이나 소중한 주변 사람을 잃는 것은 그들의 행복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에 버금가는 이야기의 구조는 흥 미롭지만, 읽고 나면 조금 허전한 것은 어쩔 수 없 다. 특히나 우리의 좋은 (?) 작품과 비교하면 쓸 데없이 힘을 주지 않는 다는 점에서는 훌륭하 지만, 우리의 불가해한 한(恨)과 깊은 슬픔 및 부조리를 조명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뒤진다. 박경리나 조정래의 경우를 비추어 보면 명백할 것이다. 하기야, 역사적 인물을 다루지 않는 한 그 들의 작풍에서 대하소설을 기대하기는 곤란할 것 이다. 큰형은 베르베르의 소설 대여섯 번째 작품쯤과 함께, 중간에 내가 드린 조정래의 『아리랑』, 『한강』 과 김훈의 『칼의 노래』, 『내 젊은 날의 숲』 등을 읽 고 있다. 다음에는 같은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나 아멜리 노통브, 알랭 드 보통 등도 기다리고 있다. 그 사이에는 훌륭한 조연(助演)인 작은형도 있 다. 적은 규모의 술친구가, 함께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그러다가 치고 박고 싸우기까지 하는 모 습은 그야말로 가관(可觀; 누가 ‘과간’이라고 하던 가?)인 즐거운 내 현재의 에피소드다. 이들과 곧 골프 놀이를 한 번 하기로 했다. 130 개를 치면 어떠한가. 술사라고 해야지~ 큰형은 요 즘 비명을 지른다. “이것들이 읽을 만하면 다른 책을 갖다 쌓아놓 고 있어. 오메 죽겄네….” 여왕개미 103호의 무운을 빈다. <p.s.>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법무사의 독서노 트」를 마친다. 업무로 바쁜 와중에도 짬짬이 그 러나 꾸준히 읽고 메모하던 필자의 독서노트를 함께 나눌 수 있어 기쁘고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다음 필자의 개성 있는 독서편력을 엿볼 수 있기 를 기대하면서,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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