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법무사 2월호

81 80 법무사 2016년 2월호 문화의 멋 • 공감 인문학 한 일정한 시간과 공간 내에 서 주어져 있는 실재적인 사 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어 떠한 사실이 지니고 있는 그 사실의 본질, 즉 형상(形相) 이 의식 앞에 나타난 것을 뜻 한다. 사실이라는 것은 일정한 시간과 공간 내에서 변화하는 개별적이며 우연적이며 실제 적인 것이요, 본질은 사실로 하여금 사실되게 하는 정수적 (精髓的)인 것으로서, 만약 그것이 없으면 사실이 성립될 수 없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며 관념적인 것을 말한다. 그러나 본질은 사실을 떠나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 라 사실 속에 존재한다. 이것이 경험적 사실을 토대로 하 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을 부정한 데카르트의 ‘회의(懷疑)’ 와는 상이하다. 그에 의하면, 사상(事象)은 본질이 나타남 (현상함)으로서만 그 의미가 있다. 즉, 사상이란 ‘본질의 현상’이다. 그는 사상은 본질이 현 상한 것, 즉 ‘본질에 있는 것’이며, 본질은 사상에 있음, 즉 ‘나타나 있는 것에 있음’이기에 본질이 나타난 사상은 개 관적으로 있다고 한다. 이 객관적으로 있는 사상이 다름 아닌 현상학의 대상이다. 이리하여 그는 ‘사상 자체로(zur Sache selbst!)’라고 하여, ‘사상을 가리키는 것(Aufweis, 提示)’과 ‘사상을 밝히는 것(Klarung, 解明)’을 현상학의 임 무라고 하였다. 현상학의 방법 - 두 가지 현상학적 환원 그렇다면사람이순수하게사물의본질곧형상을직관할 수 있을까. 후설은 현상학적 환원(現象學的還元)에 의해 우 리 이성은 ‘사상 자체’ 즉, 본질을 직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순수하게 사물의 본질을 직관 하는데방해가되는요소들을우선제거하여야한다. 즉, 사물을 순수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직관하는 것 을 방해가 되는 역사적 요소, 종래의 철학이나 과학이론, 기타 선입견 등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모 든 실제적인 판단들을 배제해야 한다. 현상학에서는 감성 적이고 실제적인 존재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고 본질적인 존재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본질을 직관하기 위한 현상학적 환원에는 형상학적 환 원과 선험적 환원의 2단계가 있다. 형상학적 환원(形相學 的 還元), 또는 본질적 환원이란 ‘판단중지(epoche)’ 혹은 괄호침을 통해서 역사적이며, 실제적인 것 즉, 질요적(質 料的)인 것을 배제하여 ‘눈앞에 있는 사상’을 본질화하는 과정이다. 역사적이며 실제적인 사실을 초월적 대상으로 보는 자연적 태도로부터 탈피하여 사실의 본질을 직관하 는 것을 말한다. 이는 무슨 신비로운 인식 작용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 으로 하고 있는 정신활동이다. 예컨대, 정원에 피어 있는 한 송이의 사실적인 빨간 꽃에서 빨강 그 자체를 보는 것 과 같은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형상학적 환원에 의하여 사실에서 본질로 옮아가며, 사실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과 학, 정신과학 등의 사실학을 배제하고, 본질적으로 옮아간 다. 이에 따라 현상학을 ‘본질학’이라고도 부르게 되는 것 이다. 두 번째, 이 본질화된 사상(事象), 즉 소박한 의식 속에 주어져 있는 본질로부터 순수의식 속에 있는 선험적 주관 에로 환원하는 과정이 선험적 환원, 곧 협의의 현상학적 환원이다. 이는 의식되어 있다는 것 이외의 일체의 것을 배제하여 본질화 된 사상을 순수의식 속에 의식화하는 것이다. 이상 의 두 가지 과정에 의해 우리의 이성이 ‘사상 자체’ 즉 본 질을 직관할 수 있다는 것이 현상학의 주장이다. 현상학의 내용 - 노에시스와 노에마 후설에 의하면 의식의 본질적 특성은 ‘지향성’에 있다. 의 식은 반드시 어떤 대상에 관한 의식이며 어떤 내용을 지향 한다. 환언하면 의식은 ‘그 무엇에 관한 의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의식은 의식하는 작용과 의식되는 대상과의 양극을 갖는 주관과 객관의 상관관계로서 성립한다. 그런데 의식의내면에서도작용적인요소와대상요소가구별된다. 여기에서 ‘노에시스는 주관이 감성적으로 받아들인 질 료(質料)에 의미를 부여 또는 형성하는 것 → 실제적 요소’ 이고, ‘노에마는 그 결과 이루어지는 의미형성체 → 비실 제적 이데아적 요소’다. 노에시스가 사실(질료)을 소재로 노에마를 형성하는 것을 ‘구성(Konstitution)’이라 하고, 모 든 존재는 주관에 의해 구성된 범위 내에서만 그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이상과 같은 구조를 가진 우리의 의식은 분산 고립된 것이 아니라, 통일된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 이를 두 고 ‘현상학적 자아’ 또는 ‘초월적 자아’라 한다. 그것은 정신 과 육체를 가지고 있는 실제적 존재로서의 자아가 아니라 현상학적 환원을 거쳐 온 순수자아다. 환언하면, 변화하는 모든 체험에 있어서의 불변적이고 자동적인 자아를 말한다. 만약 일관해서 존재하는 이러한 불변의 주체가 없다면 우리는 어제의 소나무가 오늘의 소 나무라고 주장할 수 없을 것이며,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판단중지와 생활세계 그는 그의 철학에 엄격한 기초를 마련하고자 ‘판단 중지(判斷中止)’를 강조하였는데, 특히 자연과학의 가 정에 대한 판단중지를 강조하였다. 이는 자연과학 이전 의 경험적 양태, 즉 인간경험의 원초적 형식인 ‘생활세계 (Lebenswelt)'에로의 환원을 의미한다. 예컨대, 우리는 일상적으로 우리가 서 있는 땅은 정지되 어 있는 거대한 평면으로 느낀다. 그렇지만 자연과학적 지 식으로 보면 지구는 자전과 공전을 하고 있는 구면체(球 面體)임이 틀림없다. 이때의 우리의 느낌은 주관적이고, 과 학적 근거는 객관적이다. 이 경우에 진리는 객관적인 과학 적 이론 쪽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진 자 연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지각적 자연이다. 이것을 객관 적이고 합리적인 과학적 자연에서 보면, 하나의 억견(臆 見,doxa)의 세계에 불과하겠지만, 합리적 자연이란 이 억 견의 세계를 토대로 하여 추상화한 것이다. 따라서 자연과학주의가 이 추상화, 이념화된 것에서만 참된 진리를 찾는 것은 잘못이며, 이를 배제하고 이에 물 들지 않는 원초적인 지각의 세계 곧 생활세계로 귀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초기에는 선험적 주관에 의해 구성된 세계를 중시 하였으나말기에는신체를지닌주관에의해체험된세계를 강조하였다. 결국 진리의 확실성은 생활세계의 사건들에 연 원하는 증거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후 설은 ‘생활세계’라는개념을도입하여자연과학에의해지배 되고있는세계관으로부터해방되고자하였다. 노에시스 (Noesis) 지각하는 것 (의식의 작용적 측면) 작용적인 요소 노에마 (Noema) 지각된 것 (의식의 대상적 측면) 대상적인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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