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법무사 3월호

79 78 법무사 2016년 3월호 문화의 멋 • 공감 인문학 영원불변한 진리를 담고 있는 책, 『시경』 『시경』은 천하를 주유하다 뜻을 이루지 못한 공자가 나 이 68세에 고향에 돌아와 편찬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11세기에서 기원전 6세기까지 50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황하(黃河)가 관통하는 중원(中原)을 중심으로 중국의 고 대 제왕들은 지방까지 채시관(採詩官)을 파견해 민간에 떠도는 노래와 가사를 모아 민심의 동향을 점검하고 이를 정치에 참고했는데, 『시경』은 이렇게 채집된 중국 최초의 시가집이다. 본래 3,000여 편이 있던 것을 공자가 311편으로 간추려 정리했으나, 오늘날 전하는 것은 305편뿐이다. 『시경』은 풍(風), 아(雅), 송(頌)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이중 가 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풍’은 ‘국풍(國風)’이라고도 하는 데, 여러 제후국에서 채집된 민요로 이루어져 있다. 사랑 을 노래하는 시가 대부분으로, 남녀 간의 애틋한 정과 이 별의 아픔을 소박하지만 진실한 문체로 담아냈다. 『시경』의 원래 제목은 “시(詩)”였고, 300여 편의 시가 실 려 있어 “시삼백(詩三百)”이라고 했던 것을 기원전 2세기 쯤 한무제(漢武帝) 때부터 ‘시’에다 ‘경(經)’자를 붙여 ‘시경’ 이라고 이르게 되었다. ‘경’자는 베틀에 세로로 걸어 놓은 실로서 베를 짜는 데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확대되어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것’, ‘영원불변한 진리’ 등의 의미로 확장되었다. 성경이나 불경, 코란경, 도 덕경 등에 ‘경’자가 붙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무제가 ‘시’에다 이런 ‘경’칭을 한 것은 유학(儒學)을 정 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배경이 깔려 있다. 그는 백성 들을 안정시키고 정권을 이끌어가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 유학을 부흥시켰다. 교육기관에 학과를 개설하고, 『역경』, 『시경』, 『서경』, 『예기』, 『춘추』 등 다섯 경서(經書)에 능통한 ‘오경박사(五經博士)’라는 관직을 두고 제자를 양 성해 유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시경』은 유교 교화서가 아닌, 사회상 반영한 시집 어떠한 학문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고 특정 목적에 이용되면 대개 진실에서 멀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 경』에 정치적 교화와 관련된 것들만 담겨 있다고 생각한 다. 하지만, 305편의 절반이 넘는 시들은 당시의 사회상과 사람들의 내면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강가에서 얼핏 본 처녀에게 상사병에 들린 청년의 오매 불망(寤寐不忘) 전전반측(輾轉反側) 애타는 심사, 오랜만 에 친정 부모를 뵈러가는 새색시의 두근거림, 먼 지방으로 출장 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그리움, 훌륭한 고을 원 님의 자손들이 잘되기를 비는 마을사람들의 축원 등이 『시 경』 앞머리 11편을 뭉뚱그린 주제다. 뒷장을 더 넘겨 보면 욕정을 당장 받아 줄 테니 제발 개 가 놀라 짖어댈 만큼 허둥대지 말아 달라는 처녀의 화끈 한 속내도 보이고, 몰리에르(Moliere 1662-1673, 프랑스 의 희극작가, 배우)의 「수전노」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인 색한 부자의 어리석음을 야유하는 대목도 보인다. 온갖 욕망이 분출하는 오늘날의 독자들은 당연히 무덤 덤하겠지만, 『시경』」을 신주(神主) 모시듯 했던 조선시대 선비라면 이러한 내용에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을 일이 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이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같은 분들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을 수도 있겠다. 그들은 『시경』을 성현이 ‘어린 백성’을 교화하기 위해 지 은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나라 이후 2,000년 동안이나 덧씌워 놓았던 『시경』의 화장을 지워 내 고, 진솔하고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 『시경』의 진면목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시경』의 여러 모습 ◎ 즐겁지만 음탕하지 않다 『시경』은 중국문학사상 희귀한 연애문학 또는 여성문학 의 특징을 보인다. 『시경』이 자랑하는 「관저(關雎)」를 보자. 구욱구욱 물수리 (關關雎鳩) 강에서 울고요 (在河之洲) 아리따운 아가씨 (窈窕淑女) 사내마음 울려요 (君子好逑) 여기서 저구(雎鳩)는 물새의 일종인 ‘물수리’고, 관관(關 關)은 물수리의 울음소리다. 아마도 “구욱구욱” 울었나 보 다. ‘하(河)’는 황하를 말하고, ‘재하지주(在河之洲)’는 강 가운데 섬을 말한다. ‘요조숙녀(窈窕淑女)’는 정결하고 아 름다운 아가씨다. 지금도 아버지들은 딸아이가 요조숙녀 로 커 주기를 희망한다. 군자君子는 다른 해석이 있으나 아가씨를 그리워하는 젊은 사내로 본다. 들쭉날쭉 물마름을 (參差荇菜) 이리저리 찾고요 (左右流之) 아리따운 아가씨 (窈窕淑女) 자나깨나 보고파 (寤寐求之) ‘참치(參差)’는 가지런하지 못하고 들쭉날쭉한 모습을 말하고, ‘행채(荇菜)’는 물속에서 자라는 마름이다. 우리는 지금도 ‘자나깨나 잊지 못함’을 ‘오매불망寤寐不忘’이라 표 현한다. 시원은 역시 『시경』이다.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해서 (求之不得) 그리워서 잠 못드네 (寤寐思服) 『시경 (詩經) 』, 3천년 지속된 사랑의 공식 이상진 법무사(서울중앙회) / 본지 편집위원 /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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