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80 법무사 2016년 3월호 문화의 멋 • 공감 인문학 그리움은 가이없이(悠哉悠哉) 밤새 이리 뒤척 저리 뒤척(輾轉反側) 여기서 생각과 고민이 많아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임을 되풀이하는 것을 ‘전전반측(輾轉反 側)’이라 하게 되었다. “즐겁지만 음탕하지 않고 슬프지만 감상적이지 않다(樂 而不淫 哀而不傷).” 공자의 이 유명한 시론(詩論)은 「관저」에 관한 평이다. 『시경』의 사랑은 호메로스의 영웅들이 보여 준 사랑만큼 육욕적이지 않다. 낙이불음이다. 애절하지만 감상적이지 않다. 절절한 연정을 드러내지만 절제되어 있다. ◎ 음탕한 여자인가, 버림받은 여자인가? 사랑이 있는 한 인간의 역사는 계속된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떠받쳐온 힘은 성현들의 고매한 말씀만이 아니라 청 춘남녀가 서로 만나 이루는 사랑에 있었다. 사랑이 곧 삶이 고, 역사다. 만남의 황홀감이 있는가 하면 이별의 슬픔도 있 다. 거짓 없는 옛사람의 마음을 읽어 보자. 다음은 『시경』 모 시서(毛詩序)에서 「맹(氓)」이란 시의 일부분이다. 히죽거리며 사람 좋은 웃음 짓던 떠돌이 사나이, 베를 안고 실 사러 왔었지요. 실 사러 온 게 아니라 날 꼬시러 온 거였지요. 그이를 배웅하여 기수를 건너서 가다보니 돈구까지 이르렀지요. 저 높은 언덕에 올라 복관을 바라봅니다. 당신이 보이지 않아 눈물을 주르르 흘립니다. 당신이 오셔서 웃으며 재잘재잘 떠들어댔지요. 뽕나무 잎 바람에 날려 떨어지기 전에는 그 잎들은 윤기가 자르르 했지요. 아아! 비둘기야! 부디 오디랑 먹지 말아라. 아아! 여자들아! 사내놈과 놀아나지 말아라. 사내들이야 놀아나도 변명할 말이 있지만 처녀들은 놀아나면 변명할 말이 없다오. 뽕잎이 바람에 흩날리니, 누렇게 시든 잎새 떨어지네요. 나 그대에게 시집간 이후로, 여러 해 가난을 밥 먹듯 하였지요. 기수는 넘실넘실 흘러가면서 수레의 휘장을 적시는군요. 여자는 시종일관 변하지 않았는데 남자들의 행실이 변한 거지요. 남자란 믿을 수 없는 것,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흔들리네. 氓之蚩蚩맹지치치, 抱布貿絲포포무사 匪來貿絲비래무사, 來則我謀내즉아모 送子涉其송자섭기, 至于頓丘지우돈구. 承彼㧪垣 승피궤원, 以望復關 이망복관 不見復關 불견복관, 泣涕漣漣 읍체련련 旣見復關 기견복관, 載笑載言 재소재언 桑之未落 상지미락, 其葉沃若 기엽옥약 于此鳩兮 우차구혜, 無食桑葚 무식상심 于此女兮 우차여혜, 無與士耽 무여사탐 士之耽兮 사지탐혜, 猶可說也 유가설야 女之眈兮 여지탐혜, 不可說也 불가설야 桑之落矣 상지락의, 其黃而隕 기황이운 自我徂爾 자아조이, 三歲食貧 삼세식빈 淇水湯湯 기수상상, 漸車帷裳 점거유상 女也不爽 여야불상, 士貳其行 사이기행 士也罔極 사야망극, 二三其德 이삼기덕 ‘맹’자를 이루는 ‘亡’자는 죄를 지은 포로의 눈을 뽑아 버 린 모양을 그린 것이다. 끝까지 말을 안 듣는 전쟁포로들의 눈 한쪽을 찔러 안 보이게 만들고 노예나 종으로 부렸음을 의미하는 글자가 바로 ‘맹’이다. ‘포포무사’는 가공품인 베를 안고 와서 원료인 실을 사러온 장사꾼으로, 2,700년 전에 이 런 장사꾼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뽕잎이 시에 등장하는 것 을 볼 때, 3,000년 전에도 누에를 키우고 비단을 짰음을 알 수 있고, 당시가 가부장제 시대임도 알 수 있다. ◎ 만리장성의 눈물 오늘의 중국인에게 만리장성은 중국문명을 세계에 알리 는 자부심의 상징이지만 당시 중국인들에게는 이별의 아픔 과 노역의 고통을 강제한 통곡의 벽이었다. 『시경』에는 남편 을 부역으로 보내고 홀로 남은 여인들의 그리움이 이곳저곳 에서 묻어난다. 「역사에 나가신 님(君子于役)」을 읽어 보자. 우리 님은 부역에 나가 돌아올 날 속절없네. 언제나 오시려나? 닭은 홰에 오르고 해 저물자 소와 양도 돌아오는데 부역에 나간 우리 님이여! 그 어이 그립지 않으리! 전략(前略) 부역에 나간 우리 님이여! 목마름, 굶주림이나 겪지 않으시길! 시야말로 가장 고급한 소통의 도구 『시경』의 305편을 달달 외운 최초의 사람은 놀랍게도 공 자였다. 그는 『시경』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제자들을 꾸 짖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詩), 가이흥(可以興) 가이관(可以觀) 가이군(可 以羣) 이지사부(爾之事父), 원지사군(遠之事君) 다식 어조수초목지명(多識於鳥獸草木之名)” “시는 마음으로 느낀 것을 밖으로 표출하게 할 수 있 다.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알게 해 준다. 개인이 어떻 게 세상과 조화롭게 소통하며 방종과 타락에 이르지 않을 수 있는지를 알게 해 준다. 온갖 스트레스를 해소 하는 카타르시스 작용을 한다. 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 준다. 끝으로 새, 짐승, 풀, 나무, 벌레, 물고 기 등의 생리와 명칭을 알게 해 주는 덤도 있다.” 개개인의 아집이 득세한 불통의 시대에, 상하사방 동서고 금과 소통하는 데 ‘시’만 한 것이 있을까? 시는 가장 순수한 인간 심성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며 ‘나’를 인간화한다. 『시경』은 그 휴머니즘의 도정에서 사람들 이 두고두고 간직해야 할 보석 덩어리다. 그 앞에선 이념도, 진영도 큰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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