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법무사 2016년 3월호 문화의 멋 • 시(詩)와 보내는 오후 86 새콤 달콤 묵은 김치가 온종일 백열등 안에 매달려 있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마비된 한 손으로 손잡이를 돌리자 창문 위로 축축한 라면 부스러기가 데굴데굴 부딪힌다. 아프지 않다. 졸립다. 이런 일이 어디 한 번 뿐인가. 흔들리는 건 흔들리지 않으려는 내 마음인걸, 그래서 날마다 다시 웃는 무뇌아가 되었지. 스테인리스 밥 한 그릇에 고개도 숙이고 달빛에 그을린 햇볕들이 비닐봉지에서 뚝 떨어져도 사는 건 마지막 퍼즐 끼우기처럼 탱탱하게 닫힌 냉장고 문을 열고 그 속을 들여다보아도 알 수가 없다. 오랜 가뭄으로 벌어진 논바닥이 뜨거운 물속에 헤엄친다. 나이 50을 넘고서도 아직 닫힌 창문을 여백 없이 열지 못하고 날마다 백열등 속에 시어빠진 김치를 꺼내 후다닥 사랑 찾아 떠난 시간을 먹는다. 커다란 눈망울엔 눈물만이 앞 가릴 때 커피는 체온 낮추고 커피잔은 덩그렇다 커다란 물방울이 찻잔에 우박으로 떨어진다 피안彼岸의 구도승求道僧처럼 아니 꼼짝 않는 바위처럼 그렇게 시간 흘러 피는 말라 입술까지 태우는 곳 벗어나 피난길에 오르려 하다가도 주춤대는 커다란 미련들이 서로 엉켜 잡힌 발길 피 같은 시간들은 맥도 없이 잘도 간다. 전종현 법무사(부산회) 라면을 끓이며 커 피엄행렬 법무사(인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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