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법무사 11월호

83 법무사 2016년 11월호 고고하게 고문학개론(古文學槪論)을 가져와 읽는 옆 마을 동창 세희의 손도 잡아 보지 못한 채 판 깨졌던 추억이 있 는 남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대부분이 저렇듯 성석제의 소설들은 작심이나 인내심이 필요 없다. 큰 방송사의 유명한 코미디 시트콤 PD가 ‘성석제 소설은나오는대로읽는다’면그분위기가짐작되고도남는 다. 유머와코믹, 풍자와반전이코드라서진도또한빠르다. 지하철이나 버스도 좋고 철로를 무단 횡단할 때도 좋다. 이 대목에서 성석제 소설가는 “조심해야 한다. ‘철로에 무 단 진입 시 법에 의해 처벌 받는다’는 경고문이 있다. 그러 니 무단 횡단을 조심하라는 게 아니라 그 경고문을 읽다 철로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즐겁게 춤을 추다가』를 통해 충고한다. 아니꼽고 더럽고 치사한 투명 인간들의 이야기 낚시하다 낚시에 낚여 본 사람, ‘소변금지’를 ‘지금변소’로 해석해 멋대로 방뇨 중 개에게 쫓겨 달아나 본 사람, 술자 리 오기 대결로 겨울밤 맨발로 산을 올라본 사람, 보이스 피싱 전화 받고 상대방 실실 약 올리다 조선족 남자에게 “달 먹고 달 사러라 새끼야”라고 욕먹어 본 사람, 집 앞에 서 신호위반으로 딱지 끊긴 게 분해 오기로 ‘노들 경찰서 김만복 경장’ 옆에서 근무태도 체크하는 것으로 김 경장의 항복을 받아 냈을 만큼 『인간적이다』는 사람이라면 성석 제의 『지금 행복해』부터 아무렇게나 읽어 보기를 권한다. 성석제의 문체에 따르면 ‘아더매치유’는 아니꼽고, 더럽 고, 매스껍고, 치사하고, 유치하다의 뜻이다. 그의 컴퓨터 기억력 속에는 ‘조개 껍질 묶어 비니비니 바나바나 바롯싸 바롯싸데 예뽀이 따이따이예’ 노래가 있다. ‘상대가 노약자 라 바 좃는데 족발로 촛대를 까서 치료를 밧앗슴니다’나 ‘넌 빠져 임마’를 ‘넌 쁘와져 임마’로 씀으로써 웃음을 챙겨 주는 섬세한 센스가 성석제의 텍스트를 장식한다. 성석제를 압축해 보여 주는 재담집 『즐겁게 춤을 추다 가』를 필두로 단편소설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참말 로 좋은 날』, 『인간적이다』, 『지금 행복해』 등이 있고 장편 소설로 『위풍당당』, 『단 한 번의 연애』, 『투명인간』 등-그가 펴낸 책들이 워낙 많아 ‘등’ 자를 일단 붙이고 봐야 안전하 다-이 있다. 그런데 『투명인간』이 좀 문제다. 이전의 성석제와는 너무 다른 색깔의, 아픈 소설이다. 6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산업화와 민주화를 정신없이 거치는 50년 동안 적폐가 쌓 이고 쌓인 대한민국의 속살을 인정사정없이 드러냈다. 성석제 특유의 해학과 컴퓨터 기억력에 웃다 울며 눈물 콧물 훔치는 『투명인간』의 삶은 중반을 넘어서면서 깊은 연민의 정으로 숙연해진다. ‘이러다 곧 웃기고 나오겠지’라 는 독자의 통속적 기대를 무참히 배신한다. 산골 오지의 전형적인 베이비부머 가족들의 50년 역사 이다. 천만 서울의 인구 중 토박이가 10%라 치면 나머지 90%의 이야기다. 60, 70년대 구로공단으로, 청계천으로, 공사판으로 몰려들었던 전국의 처녀, 총각들이 어렵게 가 정을 일구었고, 그들이 낳은 자식들이 다시 가정을 이루며 거대해진 ‘서울’의 주마등이다. 서울은 ‘서럽게 울어서 서울’ 이던가. 하나같이 쟁쟁한 소설인 조세희 『난장이가 쌓아 올린 작은 공』, 신경숙 『외딴 방』, 김진숙 『소금꽃나무』가 『투명 인간』에 투명하게 녹아 있다. 3남 3녀 모두가 고진감래로 끝나지 못해 아쉽지만 그것이 ‘서울특별시 투명인간’들의 엄연한 현실이다. 참말로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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