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법무사 1월호
82 그러나 역사 속의 진과 사실 속의 진은 다른 나라였습니다. 후세 역사학자들과 유학자들이 날조하다시피 해서 왜곡시킨 이미지로 인 해 오해를 받았는데요. 진을 만든 법가 사상가와 그들이 주장한 법 치 역시 많은 오해를 받았지요. 실제로는 가혹함만을 내세우거나 백 성들을 힘으로 찍어 누르자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에 있어 독 자적인 영역의 발견, 사회과학적 사고, 평등하고 합리적인 시스템 건 설과 그것에 기반한 국력의 신장 등을 주장한 선진적인 정치사상이 었는데 말이죠. 선진적인 법치 시스템, 천하통일의 발판이 되다 ‘상앙’이란 인물이 있었습니다. 법가사상을 가지고 강력한 개혁 드 라이브를 펼쳤던 사람이죠. 이 상앙이 진에서 법을 바꾸면서 법치 중심으로 나라를 재편했는데 당시 진(秦)은 왕실의 오랜 내분으로 국력이 쇠약해졌고 중원과는 거리가 멀어 낙후한 문화 환경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서방의 오랑캐 국가라는 인식이 중원의 열국 들에게 강했지요. 하지만 중원의 치열한 전쟁에서 벗어난 지역이었고, 위수 분지를 중심으로 한 천연의 요새를 가졌으며, 땅의 생산력이 좋은 나라였습 니다. 상앙은 진이 가진 이점을 살리며 국력을 일신하고 부국강병을 위해 구체제를 일신하기로 합니다. 구체제의 후진적 면과 구 귀족들의 기득권을 철폐해 효율적인 국 가체제를 만들기 위해 법치를 내세웠는데 그의 법에는 누구도 예외 가 없었죠. 태자가 법을 범하니 태자도 법으로 다스리려고 했고 그것 이 안 되자 태자의 스승들에게 형벌을 내렸는데 당시 상앙이 법치를 가지고 진을 한참 다시 만들어 나갈 때 이러한 말이 돌았습니다. 위 수가 피로 물들고 비명소리가 천지에 진동을 했다고. 위수 강가에서 법 집행을 했는데 얼마나 가혹했으면 강이 피로 물 진의 법치는 의욕과 동기부여를 위한 포지티브 한 측면의 법률이 많았고, 백성들의 권리를 명확히 보장하기 위한 것들이 많았죠. 괜히 진이 단시일 내에 크게 성장해서 천하를 통일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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