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법무사 1월호

84 모두 법으로 규정하고 보장한 것인데 진의 법치는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벌하는 등 네거티브 한 측면보다는 이렇게 의욕과 동기부여를 위한 포지티브 한 측면의 법률이 많았고, 백성들의 권리를 명확히 보장하기 위한 것 들이 많았죠. 괜히 진이 단시일 내에 크게 성장해서 전국칠웅에서 진을 제외한 나머지 육국을 파도처럼 밀어 붙이고 해머처럼 두들겨서 천하를 통일한 것이 아닙니다. 또, 쉽게 도량형을 통일하고 요동에서 광둥지역까지, 그 넓은 중국 땅을 50일 문서행정권으로 통합시킨 기 적을 만든 게 아니고요. 상앙에서 시작한 진의 법치가 그만큼 체계적이고 합리적이고 선진적이었다는 것이죠. 그 체제 앞에 평등을 보장했고요. 그것도 역시 법으로 보장했는데 법가, 법치의 진은 대단한 저력을 가진 나라 였습니다. 얼마 안 가 무너졌지만 진의 시스템은 한(漢)이 고스란히 수용했지요. 법가를 안다면, 우리 현실의 치유법도 보일 것이다! 법가사상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법대로’일 것이고 ‘법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법치는 무엇일까요? 법치는 바로 ‘인치(人治)의 부정(否定)’인데, 특히 유가가 말하는 인치의 부정입니다. 공맹이 말하는 인치는 간단합니다. 통치계층들이 착해지고 덕을 쌓은 지식인들이 정치의 장에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정치의 장에 어진 덕 을 갖춘 군자들이 가득해지면 저절로 정치가 잘될 것이고 백성들은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으며 국가는 평 안해진다는 것이죠. 하지만 법가는 그런 인치에 반대했습니다. 사람만 착해지고 덕을 쌓는다고 정치가 절로 발 전하고 국가가 평안해진다? 인간은 누구든 이기적 욕망을 가진 존재이고 이랬다가 저랬다가 이중성을 지닌 존 재인데 사람의 마음에만 호소해서는 안 된다. 명확한 기준, 성문화된 규정을 가지고 다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법치지요. 하지만 단순히 인치 VS 법치, 이런 구도로만 싸운 게 아니고 기득권 문제로 많이 싸웠습니다. 유가는 법과 제도를 거부하면서 개혁, 변법노선을 거부했는데 단순히 사람의 마음, 덕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예(禮)’로 대표되는 관습으로 사회를 끌고 가자고 했습니다. 법가는 이에 반대하며 관습들은 과거의 것으로 현재 에는 맞지 않으며 특히 세습 귀족들의 기득권을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실제 유가사상을 내세우는 사람들 중에는 귀족들이 많았고 군주 중심으로 일원적인 국가체제를 만드는 데 있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지요. 그 들은법가사상가들을아주싫어했는데춘추전국시대때유가와법가는정치의장에서첨예하게대립했습니다. 그런데법가가만든진의통일로그들의대립과논쟁갈등은종식된게아닙니다. 한나라때 소금과철전매를놓 고 벌어진 ‘염철 논쟁’, 그리고 호족들이 망친 나라를 다시 재건해 보려고 했던 동탁이란 사람의 등장과 동탁에 대 한반발문제, 또법가적입장의 ‘조조’와유가적입장을지지한귀족들을대표로한 ‘사마’와의갈등, 제갈량의촉한 통치, 북송때왕안석의구법당, 사마광의신법당의논쟁과갈등, 남송시절진량과주희의왕패논쟁, 법가적색채가 강했던모택동의대약진운동까지전체중국사에서계속해반복된갈등이지요. 법가적지향을가진정치세력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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