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법무사 2월호

9 법무사 2017년 2월호 공부한사람이이런일을해야지요! Q 애광원이 이렇게 넓은 곳인 줄은 몰랐습니다. 장승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하얀 집들의 풍경이 참 아름답네요. 그렇지요? 사람들이 그래요, 어떻게 이런 명당에 자리 를 잡았냐고. 저에게 선견지명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애 광원이 처음 설립되던 1952년에 이곳은 아무도 원하지 않 던 곳이었어요. 처음에는 많은 피난민들이 살던 동네였지 만, 전쟁이 끝나고 모두 서울로, 부산으로, 거제읍내로 떠 나가고 우리 애광원만은 갈 데가 없어 그대로 남아 있었는 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 어느덧 명소가 되었네요. Q 1952년이라면 6 · 25전쟁 때이고 거제도는 포로수용 소로 유명한 곳이지 않습니까. 그런 이곳에 어떤 사연 으로 애광원이 설립되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전쟁이 터지고 1951년에 저도 거제도에 피난을 와 있었 어요. 그러던 어느 일요일에 교회를 갔다가 김원규 선생님 을 만났어요. 김 선생님은 당시 보건사회부 행정관으로 거 제도에 파견 나와 있었는데, 제가 이화여대 가사과를 다닐 때 시간강사였던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던 인연이 있었죠. 김 선생님이 불쑥 자기를 따라서 어디를 좀 가보자고 하 는 거예요. 무슨 일인가 싶어 딸아이를 시어머니께 맡기고 따라갔지요. 논두렁을 지나고 지금 우리 사무실 자리가 있 는 이 언덕까지 올라와 어떤 피난민 움막 안으로 들어갔어 요. 그런데 거기에 아직 젖도 떼지 못한 갓난아기 7명이 미 군담요에 돌돌 말려 울고 있는 거예요. “이 아이들 좀 봐주세요.” 김 선생님 말에 놀라서 “몇 시 까지요?” 하고 물었다가 아주 혼이 났어요. “이 전쟁 통에 몇 시까지는 무슨 몇 시까지예요? 김 선생은 왜 공부를 했습니까? 공부한 사람이 이런 일을 해야지요.” 하고 호통 을 치시고는 막사를 나가 버리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아기들을 맡아 키우면서 애광원이 시작된 거예요. 이듬해 그날의 그 움막 자리에 전쟁고아들 을 위한 ‘애광영아원’을 세웠고, 전쟁이 끝나고 아이들도 성장해 영아원을 떠나고 독립이 어려운 지적장애아들만 남아 있게 되면서 영아원을 지적장애인 시설로 바꿨고, 하 나둘씩 필요한 일들과 필요한 건물들을 짓다 보니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죠. 벌써 65년 세월이 지났네요. Q 당시로서는 대학을 졸업한 보기 드문 재원이 갑자기 전쟁고아들을 맡아 키우게 됐으니 고민이 많았을 것 같 습니다. 그날 밤 아기들은 지쳐 잠들고 저 혼자 많이 울었어요. 앞으로 이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대학까 지 졸업한 게 이런 일을 하려고 한 건 아닌데, 막막하고 속 1989년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김임순 원장은 올해 나이 93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현역에서 활동 중인 사회사업가다. 지적·중증장애인들을 위한 사회복지법인 거제도 애광원에서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애광원’을 이끌고 있다.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스무 살 갓 넘은 젊은 엘리트 여성으로서 우연히 전쟁고아들을 맡아 키우며 시작된 사회사업가의 65년 인생 역정은 그 어떤 소설보다 극적이고 감동적이다. 지난 1월 17일, 짧았지만 여운이 길었던 김 원장과의 인터뷰를 풀어본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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