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법무사 4월호
81 법무사 2017년 4월호 한다고 했죠. 사실 그렇잖아요, 현실의 군주가 성인일 확률은 희박 하지 않습니까? 군주가 성인이 되길 바라고 성인임을 전제하고 국 가를 논한다면 철학으로서는 몰라도 합리적 정치사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유가는 그랬죠. 맹자는 군주에게 끊임없이 덕과 지혜를 닦으라고 강조하며, 성군이 되면 천명을 받아 천하의 주인이 될 것 이지만, 폭군처럼 하면 나라를 잃고 몸을 잃을 것이라며 겁을 주었 죠. 하지만 현실의 군주가 성군일 확률이 희박한 것처럼 폭군, 암 군일 확률 역시 희박합니다. 마음먹고 아주 작정을 한 채 나라를 망치고 국정을 파탄 내고 폭정을 거듭하는 군주를 보는 것도 성군 을 보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죠. 한편, 한비자는 제경공의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제경공이 외유 를 나갔다가 대신 안자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수레를 타 고 돌아가는데, 마음이 안 놓여 마부를 내리게 하고 자신이 직접 수레를 몹니다.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수레를 던져 두고 뛰어서 도성으로 들어갑니다. 응급실로 가는데 차를 버려 두고 달려가는 꼴이죠. 이것은 시스템을 활용하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일을 처리하려는 군주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일화입니다. 시스템을 잘 구축해 놓으면 뭐합니까? 지도자가 제대로 활용하 지 못하고 심지어 파괴하면 국가의 권위와 신뢰는 사라지는 거지 요. 그래서 늘 지도자들은 그것을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혹 시 정치시스템을 활용하지 못하거나 망치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 을 늘 자신에게 해야죠. 마지막으로 조조 이야기를 해 볼게요. 조조는 지방관이 되었을 때 뇌물을 받고 직책을 파는 일을 자행하던 열 명의 장리 가운데 여덟 명을 파직해 버렸습니다. 그는 장리들이 자신과 백성 사이를 가로막는 권력의 대기실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부수어 버린 것이죠. 조조는 권력의 대기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시스템을 중 시한, 전형적인 법가형 정치인입니다. 앞으로 법가형 정치인 조조 를 해부해 보면서 역사 속의 법가사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도 록 하겠습니다. 법가가 말하는 ‘법’은 정치안정망과 매뉴얼이고, 장삼이사가 조직의 수장이 되어도 조직이 굴러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이라고 보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통치자의 덕성과 자질에 목을 매지 않는 시스템과 틀, 매뉴얼을 논했다는 게 법가의 큰 매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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