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법무사 5월호
79 법무사 2017년 5월호 공동체 안에서 친하게 지내던 시절에나 통하던 방식이었습니다. 상앙도 「개색(開塞)편」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는데, 과거에는 사람 수에 비해 자원도 많아 쟁탈심이 적었고 부대껴야 하는 사 람의 범위도 지극히 협소했으니 유가에서 말하는 덕목들이 통치 에 적용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맹이 말하는 인이니 덕이니 예니 하는 것들은 당대 와 같이 인구가 급증하고 생산력이 발전하고 국제적으로나 국내 적으로나 이익을 다투는 상황에는 맞지 않으며, 이런 시대에는 ‘법(法)’과 같은 객관적, 강제적, 합리적 규범으로 나라를 다스려 야 한다고 보았죠. 실제 당시 법가사상가들이 활동했던 시대적 여건과 배경을 살펴보면, 유가를 비판하며 ‘법(法)’이란 새로운 통치사상을 앞세 운 그들의 주장이 가진 설득력이 굉장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강한 왕권, 강한 국력을 위한 ‘법치’의 등장 보통 법가사상이 등장한 배경으로 약육강식의 국제적 환경, ‘부국강병’이라는 군주들의 야욕과 수요를 말하곤 합니다. 중국 의 전국시대는 정글 같은 국제적 환경에서 어떻게든 국력을 극 대화해야 했고,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 강자가 되고 패자가 되고 천하를 통일하는 힘이 필요한 시대였지요. 그런 시대적 조 건과 수요에 응해 법가사상가들이 ‘법’을 새로운 통치수단과 사 상으로 역설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뭐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냉엄하다 못해 살벌한 현실, 그런 현실에 놓인 군주의 욕망과 야심, 법가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필 수적인 이야기죠. 보통 법가사상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한비 자를 흔히들 마키아벨리와 비교합니다. 사실 둘 사이에 비슷한 게 많기는 하지요. 둘 다 군주를 둘러싼 험악한 현실 속에서 어 신하들을 통제해서 군주 중심으로 나라의 힘을 극대화해 외세에 맞서자는 것만이 법가가 법을 통치의 핵심으로 말한 이유의 전부가 아닙니다. 다른 시대적 요청이 있었죠. 그것이 뭐냐면 당시 ‘사민(四民)’이라는 새로운 성격의 피지배계층이 등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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