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법무사 6월호

63 법무사 2017년 6월호 의뢰인의 이 말에서 필자는 어쩌면 법이 아니라 법의 해석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 라고 종이와 연필을 건네주었다. 나. 사실관계와 드러난 단서 사실관계는 이렇다. 의뢰인은 왕복 10차선의 주 도로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감속 페달을 밟아 속도 를 줄여 서행했지만 일시정지를 하지는 않았다. 그 리고 주도로에 차체의 절반이 넘어간 상태에서 좌 우의 교통상황을 살필 겨를도 없이 주도로 편도4 차로에서 5차로로 차선을 변경하며 달려드는 음주 운전차량과 충돌한 것이다. 1심에서는 의뢰인과 변호인이 이 사고가 피고인 의 안전운전 의무 위반보다는 상대운전자의 「도로 교통법」 위반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사고가 아니었으면 누구도 지키지 않는 일시정지 의무 위 반이 적발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 7차례 의 공판을 소비했다. 그러나 법원은 피고인에 대하여 기소된 죄명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죄가 아니라 안전운전 의무 위반으로 인한 「도로교통법」 위반죄이므로 이 사건사고의 발생에 피고인보다 상대운전자의 과 실이 더 중하다는 점만으로는 피고인의 안전운전 의무 위반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며 의뢰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이러 한 사정을 양형에 참작했을 뿐이다. 그러나 양형이 라는 것은 유죄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무죄를 주장 하는 의뢰인을 위로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필자는 의뢰인에게 남들도 다들 그렇게 한다는 것 말고, 당시에 일시정지를 할 수 없었다거나, 할 필요가 없었던 정황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리고 당시 의뢰인의 차량에 장착되어 있던 블랙박스 영 상을 보자고 하여 당시 주행상황을 시간대별로 끊 어서 재생해 보았다. 그리고 비로소 중요한 단서 하나를 발견했다. 교 차로 진입을 앞두고 진행 방향에서 볼 때 좌측 편 코너에 오피러스 승용차 한 대가 주차해 있었던 것이다. 오피러스 승용차는 전장5000mm, 전폭 1850mm, 전고1485mm의 대형차였기 때문에 주 도로의 교통상황을 살피는 데 장애가 되었음을 짐 작할 수 있었다. 1심에서 이 불법 주차차량을 지적했느냐고 물었 더니 경찰조사에서 ‘불상주차’로 교통사고조사 기 록에 올라 있는 것만 보았을 뿐 재판에서는 구체적 으로 거론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03. 항소 이유서 필자는 이 오피러스 승용차가 의뢰인의 오명을 벗겨 줄 단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의뢰인은 반색하면서 원래부터 자기가 그 말을 하 고 싶었던 것이라고 흥분했다. 의뢰인의 순발력에 유쾌하게 웃고 나서 곧바로 앉은 자리에서 항소이 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연신 엉덩이를 들썩이며 긴장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의뢰인이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오기를 수차례 거듭한 지 3시간 만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은 항소이유서(항소법원에 제출된 전문)가 완성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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