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법무사 7월호
다음으로 준왕은 중국 서주(西周)에서 고조선(단군조 선)으로 망명한 기자(箕子)의 후손이다. 그리고 준앙의 정 권을 빼앗아 건국된 위만조선(衛滿朝鮮)은 서한에 의해 멸망되었고, 서한은 그 지역에 낙랑군, 진번군, 임둔군, 현 도군 등의 한사군을 설치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과 중국의 모든 문헌에 기록된 것이 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자나 준왕이 단군조선의 뒤를 이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고려시대에 쓰 여진 『제왕운기』가 이를 잘못 기록함으로써 준왕의 뒤를 이은 위만조선과 한사군이 모두 우리 역사의 주류에 위치 하게 된 것이다. 『삼국유사』 「고조선」 편에는 “단군이 나라를 다스린 지 1500년 되는 해인, 서주(西周) 무왕(武王)이 즉위한 기묘 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으로 옮겼다 가 후에 아사달로 돌아와 은거하다가 산신이 되었다 [御國 一千五百年周虎(武)王卽位己卬封箕子於朝鮮檀君乃 移於藏唐京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 ”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단군조선이 건국 후 1500년 되던 해에 기자 가 조선에 봉해짐으로써 끝이 나고 그 뒤를 이어 기자가 통치자가 되어 기자조선이 시작된 것으로 해석되었지만, 기자가 봉한 후에도 단군조선이 끝난 것이 아니라 장당경 과 아사달로 도읍을 옮긴 것이 서로 관계가 있다고 해석 하는 것이 정확하다. 그것은 『삼국유사』 「고조선」조 말미에 단군이 아사달에서 산신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그 수명이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 소재한 광개토대왕비 79 법무사 201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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