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법무사 8월호

11 법무사 2017년 8월호 무엇일까요? 좋은 질문이에요. 제가 초임검사 시절에 15세 소년 하나 가 붙잡혀 왔어요. 아이를 앉혀 놓고 몇 가지 질문을 하는 데, 느닷없이 아이가 펑펑 우는 거예요. 아니, 내가 야단을 친것도아닌데왜울지? 아이가진정이되고난후에왜그 렇게울었냐고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하는 말이,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사람 이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 준 게 처음”이라는 거예요. 그래 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는 겁니다. 그 아이는 조손가 정에서자랐는데할머니한테늘야단만맞고자랐어요. 그게 마음에 상처가 되었는데, 검찰청에 잡혀 와서 무섭 게생긴아저씨한테혼이날줄알았는데의외로 “너가하고 싶은일이뭐니?”, “지금가장만나고싶은사람이누구니?” 물어보면서 자기 얘기를 잘 들어 주니까 갑자기 서러운 마 음에눈물을쏟았던겁니다. 당시 제가 소년범 담당 검사여서 비행청소년들을 많이 만났는데, 이 아이와의 만남이 제게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프로이트다, 융이다, 라캉이다 하면서 심리학, 정 신분석학 책을 열심히 읽으며 청소년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 뭘까 혼자서 연구도 하고 그 렇게빠져들게된거죠. 신기한 것이 심리학책은 왜 그렇게 재밌어요? 나도 모르 게 좍좍 빨려 들어가는 거예요. 페이지가 막 넘어가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탐독을 하는 거죠. 그때부터 법전은 뒷전이 고, 왜 내가 진작 이런 학문을 하지 않고 법률 공부를 했을 까후회막심한거죠. 그렇게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987년 소 년수를 우선으로 「보호관찰법」이 시행되면서 서울보호관찰 소가 설립되었는데, 제가 소장으로 부임하게 됐어요. 그때 소년범 아이들과 장애인시설 같은 곳에 봉사활동을 다니면 서 청소년 선도사업이 앞으로 내가 갈 길이라는 확신을 하 게되었죠. Q 지금은 공익활동이 주는 치유 효과가 잘 알려져 있 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개념이 없었을 때 아닌가요? 소년범들에게 봉사활동을 시킨다는 게 쉽지는 않았 을 것 같습니다. 청소년 보호관찰제도가 소년범들을 소년원에 수용하는 대신 지역사회 안에서 커뮤니티 서비스를 통해 교화하자는 정책이니까요. ‘사회봉사’를 해야 한다는 인식은 있었지만, 사실 저만 해 도 ‘봉사’라는개념을잘몰랐던세대고, 봉사를통해아이들 이교화될수있을거라는확실한믿음도없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현충원 눈 치우기 같은 봉사활동을 했 는데, 대인봉사로 범위를 넓혀 가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죠. 아이들을 장애인시설이나 노인시설 같은 곳에 데리 고 갔다가 혹시라도 피해를 주거나 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 고해서섣불리결정을못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 보호관찰의 발상지인 영국은 어땠나 사례 를 찾아봤죠. 결론적으로 대인봉사가 주는 교육적 효과가 아주 크다는 거예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시도해 보자 해서 우리 아이들 한 30여 명을 데리고 중증장애인시설인 ‘라파 엘의집’으로봉사활동을가게된거죠. 그때 봉사활동은 장애인들을 데리고 고덕동 수영장으로 가서물놀이를도와주는일이었어요. 버스를타고수영장으 어렸을 때부터 ‘사’자 달린 직업을 가져야 출세도 하고 잘 산다는 말을 듣고 자랐으니 그래야 하나 보다 하고 검사가 됐죠. 하지만, 저랑 전혀 맞지 않았어요. 행복할 수가 없었죠.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면 절대로 고시 같은 건 보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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