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법무사 10월호

84 │문화의 힘│ 살며 생각하며 필자는 은평구 응암동에서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한 달에 하루, 서울 은평구청 산하의 복지관에서 ‘공익 법무 사’로 무료법률상담 봉사를 하고 있다. 공익 법무사 활동 을 하면서 큰 보람을 느꼈던 한 할머니와의 인연을 이야 기해 보려 한다. 지난 6월, 할머니 한 분이 상담실을 찾아왔다. 올해로 78세가 되셨다는 할머니는 평소 관절염을 심하게 앓고 있었는데, 작년에 우연히 동네 공원에서 관절염에 특효약 이라는 약 한 통을 150만 원에 구입한 것이 문제가 커져 찾아왔다고 한다. “아, 어찌나 내가 아픈 곳을 탁탁 집어내는지 말이유. ‘향부자’라는 약인데, 그 약이 만병통치약이라데. 한 통만 먹으면무릎이싹나을거라고해서안살수가없더라구.” 할머니도 처음에는 돈이 없다고 망설였지만, “일단 드 셔 보시고 돈은 나중에 안내문에 적힌 계좌번호로 입금 하시라”는 약 장사의 권유에 그만 덥석 사고 말았단다. 하 지만 그 약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자 “어디서 출처도 불분 명한 가짜 약을 사 오셨냐?”며 펄쩍 뛰는 아들 때문에 어 쩔 수 없이 약 한 알 먹어 보지 못하고 반품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안내서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아 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더라구. 어쩔 수 없지 어떻게 해. 그래서 돈 안 내고 있으면 지네들이 연락하겠나 싶어 기다렸지.” 만병통치약 구입 후 반품, 압류 명령서 날아와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할머니 앞으로 법원에서 판결문 하 나가 날아왔다. 약값을 내라는 압류 및 추심명령서였다. “하늘이노랗더라고. 법원에서돈을내라는거잖유. 아들 한테말하면또혼쭐이날텐데무서워서말도못하겠고….” 그때부터 할머니의 속앓이가 시작되었다. 며칠을 끙끙 대며 지내다 보니 불면증이 찾아오고, 입맛도 없어졌다. 관절염을 없애려다 화병을 얻은 셈이 된 할머니는 자신 을 원망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며칠 후에는 일절 연락이 없던 약장사가 전화를 걸어왔 다. 할머니는 약을 반품해 가라고 했지만, 약장사는 추심 당하기 전에 돈을 갚으라고 닦달했다. 사정이 이렇게까지 되자 할머니의 동네 친구들이 나 섰다. “저기 구청에 가면, 법무사가 공짜로 법률 상담을 해 주는 곳이 있대. 거기 한번 찾아가 보면 어뗘? 그러다 사 람 죽겄어.” 그렇게 해서 할머니와 필자가 만나게 된 것이었다. 사실 할머니는 2016년 11월 2일에 지급명령서를 송달 받았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할머니는 무심코 넘어가 이의신청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해 12 월 중순경 약장사의 독촉 전화를 받았고, 올해 5월 24 일 할머니의 통장에 대한 압류 및 추심명령이 내려져 5월 29일, 문제의 압류 및 추심명령서가 날아왔다. 할머니가 필자를 찾아온 날은 6월 5일이었다. 강채원 법무사(서울서부회) 공익 법무사, 화병을 고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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