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1월호
1776년 7월 4일, 미국 13개주의대표들이필라델피아에모여독립선언문초안에서명하는그림. 독립선언문은근대자연법사상에기초한 최초의인권선언이었으나독립전쟁에참여했던노예나농민들의인권은역시보장되지않았다. 다.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토머스 제퍼슨은 많은 노예를 소유한 대농장주이기는 했지만 자연권과 인권을 중시하 는사상가임은분명했다. 또, 프랑스의 「인간과시민의권리선언」은라파예트 2) 가 기초하고 40명의 신생 국민의회 의원들이 6일간 갑론을 박하는 등 심사숙고 끝에 만들어진 것이다. 정치적 고려 가 없을 수는 없었겠지만 두 선언문 자체는 심도 깊은 고 민과숙의의결과물임이틀림없었다. 자율성없는노예·여성,인권누릴자격없다? 그렇다면 인권의 보편성이 현실에서 무시된 것은 왜일 까? 그것은선언에명시된 ‘인간’이 46개의염색체만있으 면되는것이아니었기때문이다. 자율적이고이성적인인 간만이진정한의미의인간으로인정받았다. 바로부르주 아남성들이었다. 당시 여성은 결혼서약 시 남성에게서 보호받는 대가 로 순종의 의무를 지기 때문에 자율적이지 못하다고 여 겨졌다. 노예와 하인, 가난한 무산자는 자율적 존재로 인 정받기에는 독립성이 결여돼 있는 존재였으며, 아동과 광 인에게는 자주적 이성의 능력이 결여돼 있다고 여겨졌다.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소집된 헌법 제정회의에서 하원 구성비율을 결정하는 인구를 산출하기 위해 흑인노예를 백인 자유인의 5분의 3으로 세는 타협안을 승인한 것도 같은이유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인권의 보편성이 곧바로 구체화되지 는 않았지만 선언은 그 자체로도 불도저 같은 위력을 발 휘했다. 인권이 보편적이라는 ‘자명한’ 진리는 그 스스로 인권의세력을키워나갔다. 누구나설명할필요없이자신 이 갖는 천부의 인권을 믿기 시작했고, 믿은 사람들은 그 것을현실에서확인하기위해투쟁해나갔다.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1838년에서 1848년 사이 영국 의 노동자들은 선거권을 획득하기 위해 차티스트운동을 21 법무사 201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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