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법무사 1월호

전개했다. 흑인노예들은 노예주에게 목숨을 맡긴 처지였 음에도 용감하게 반란을 조직해 나갔다. 여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프랑스혁명 2년 뒤의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 선언」은 테르미도르 반동3)으로 무산됐지만, 산업화의 진 전과 함께 유럽과 미국 곳곳에서 여성에게도 남성과 같은 권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자율성이 없어 인권도 가지지 못하는 존재로 치부됐던 사람들의 투쟁은 그 자체가 자율성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투쟁으로써 자율성을 증명하고 참정권을 획득한 무산계 급의 남성들은 유권자의 권리로 사회복지를 요구하기 시 작했다. 유럽의 식민지 전역에서 노예들의 반란이 일어나면서 영국을 필두로 노예제가 빠른 속도로 폐지되어 갔다. 또, 19세기에는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허용되지 않았지만 전 투적인 여성운동을 통해 20세기 여성해방운동의 초석을 놓았다. 선언에 불과했던 인권의 보편성은 이렇듯 스스로의 자 율성을 증명하는 사람들의 지난한 투쟁으로 인해 실제로 도 보편적이 되어갔다. 그리고 이것은 서구만의 일로 그치 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비서구권에서도 시대적 인 호소력을 지니게 되면서 지리적인 보편성도 얻어 나갔 다. 1948년 UN에서 결의한 「세계인권선언」은 바로 이러 한 보편화 과정의 정점에 해당한다. 인권 감수성, 「세계인권선언」의 세계적 보편화 이끄는 힘 「세계인권선언」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희생된 5천만 명, 더 구체적으로는 유대인 홀로코스트의 결과였다. 기 업가 쉰들러나 루터교 목사 니묄러 등 유대인 학살을 막 기 위한 영웅적 개인들의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차후 이러한 대규모의 인명살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 경을 초월한 국가 간 합의가 필요했던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은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이로 인해 각국의 인권존중 관행이 늘어나고, 국제정치에서 이를 인 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국제관습법적 지위를 획득하 기에 이른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 리에 있어서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 았으며 서로에게 형제의 정신으로 대하여야 한다. - 「세계인권선언」 제1조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 는 그 밖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 생, 기타의 지위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구별도 없 이, 이 선언에 제시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 이 있다. 나아가 개인이 속한 나라나 영역이 독립국이든 신탁 통치지역이든, 비자치지역이든 또는 그 밖의 다른 주 권상의 제한을 받고 있는 지역이든 그 나라나 영역 의 정치적, 사법적, 국제적 지위를 근거로 차별이 행 하여져서는 아니 된다. - 「세계인권선언」 제2조 「세계인권선언」 제1조의 첫 문장은 프랑스 대혁명과 미 국 독립전쟁 직후의 인권선언과 유사하다. 그러나 두 번 째 문장에서 ‘인간이 이성과 양심을 소유했다고 선언’함 으로써 이전 시기 인권을 인정하는 기준이었던 자율성과 3) 프랑스 대혁명 기간 중 혁명력 제2년 테르미도르 9일(1794.7.27.)에 시작된 반란. 이 반란으로 막시밀리앵 로베스피에르는 몰락하고 혁명의 열기와 ‘공포정치’가 끝났다. 22 시사 속 법률 차별은 가고 인권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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