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준 셈이지요.” 플라이크는 우리 모두가 한스를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스는 아직 자아가 완성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세상의 여러 가지 길 앞에서 방황했다. 원래는 자연 속에서 산책하고 낚시질과 수영도 하며 몽상을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그런 소년이 어른들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삼게 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그로 인 해 자신을 잃어버린 채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다. 사랑도 실패하고 위로해줄 사람조차 없는 환경에서 한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한스를 지켜보면서 내가 안타까웠던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던 그의 현실이었다. 자연 속을 거닐며 어 릴 적 추억을 떠올리면서 행복을 느꼈던 한스였지만 현실에서는 자 신이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 학교 공부도, 아버지 곁도, 대장간 일도, 모두 자기 것이 아니었다. 가장 꿈이 많을 그 나이에 하고 싶 은 일조차 찾지 못했던 한스는 불행한 아이였다. 자기의 꿈을 제대로 갖지 못하는 것은 오늘 우리 아이들의 얘기이기도 하다. 지금도 보면 청소년 시절에 갖게 되는 희망이라는 것도, 스스로의 주체적 선택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우 가 그리 많지 않다. 대개는 어른들의 바람이 그대로 아이들의 희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나르시시즘 서론」에서 이를 ‘부모의 나르시시즘’이라고 표현했다. 사내아이는 자기 아버지를 대신하여 위대한 사람이 되고 영웅이 되어야 하며, 계집아이는 어머니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뒤늦은 보상으로 잘생긴 왕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유치한 속성을 지닌 부모의 사랑이란, 결국 부모의 나르시시즘을 자식이 라는 대상에게 그대로 내보이는 것에 불과하다. 부모들은 자신이 포기했던 나르시시즘을 부활시켜 자식을 통해 이루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욕망은 불행하게도 자 신이 아닌, 타자로서 부모의 욕망일 뿐이다. 바로 오늘 우리네 이야기다. 부모들은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자식을 통해 실현하려 한다. 수레바퀴는 부모의 삶을 대신 사는 우리 위에도 있다 81 법무사 2018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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