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즉, 문화계 성폭력에 는 동의하지만 정치인의 그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거나 정치인의 경우도 대상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식이다. 물론 사안에 따라 성폭력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때로는 실제 무고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 요한 것은 진위가 가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레짐 작으로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미투운동이 오염됐다는 식 으로 미투운동 자체의 의미를 퇴색시키려는 시도들의 문 제다. ‘미투운동의 오염’이라는 말에는 진짜 미투에는 동의하 지만 가짜 미투에는 반대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 러나 미투운동의 본질은 몇몇 가해자의 처벌이 아니라 성 차별적 문화 자체에 대한 고발과 개선에 있다. 남성권력이 가지는 가해자성에 대한 성찰과 반성 없이 미투의 진위 여부를 가리려는 행위는 미투운동의 본질을 오해했거나 성폭력 문제를 소수의 일탈행위로 치부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성폭력 문제가 소수의 일탈행위라면 여성 대부분이 피 해자성을 가질 이유는 없을 것이다. 또, 여성들이 자신의 일생에서 겪은 크고 작은 성폭력을 특정 남성의 문제라고 생각했다면 지금과 같은 폭로와 고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는 가부장적 문화에서 수치 심 때문에 은폐하거나 자책감에 빠지는 일이 여전히 계속 되고 있을 것이다. 성폭력 없는 세상 = 성차별 없는 세상 이 밖에도 미투운동을 호도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보수 정치세력의 음모라는 주장이다. 성폭 력 행위로 고발당한 남성의 다수가 개혁·진보 진영에 속 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에는 전·현직 여성 국회의원들도 포함돼 있는데 여성이 함께한 다고 해서 주장의 신뢰를 더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앞서 여대에서 패거리 행동을 한 대학교의 학생 중에는 여학생도 있었다. 남성성을 우위로 생각하는 문화에서 여 성이 남성성을 내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특히 권력을 가진 여성들에서는 더욱 쉽게 일어날 수 있다. 같은 여성 이지만 여성 일반이 갖는 피해자성을 자각할 기회가 상대 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미투운동이 보수 정치세력의 음모라는 주장은 시대를 역행하는 사고이기도 하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오랜 동안 민주 대 반민주의 이분법적 전선이 한국사회를 지배했다. 그 속에서 여성인권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치 부되어 왔다. 하지만 현재의 미투운동은 성차별 문제가 민 주와 반민주, 그리고 개혁과 보수를 망라하는 것이라는 자 각 속에 일어난 것이다. 즉, 미투운동은 진영논리가 아니라 오히려 진영논리가 깨졌기 때문에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미투운동을 권력 일반의 문제로 치환하는 논리도 문제 가 있다. 보좌관이 여성 국회의원을, 기사가 사모님을 성 폭행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권력 일반에 문제제기를 해 야지 성 권력만을 문제시하냐는 논리다. 물론 성폭력도 권력의 문제다. 그런데 모든 권력이 차별에서 비롯되듯이 성폭력도 성차별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성폭력을 권력 일 반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은 성차별을 은폐한 채 특정 권 력을 비호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성폭력에 대한 여성의 발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 세가 되었다. 앞으로 더 많은 폭로와 고발이 성차별과 그 에 따른 성폭력을 주저하게 만드는 경험칙을 형성하리라 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지금과 같은 시 각차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성차별이 없어질 때 비로 소 남녀는 같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 다. 이제 시작이다. 여러분은 이 거대한 물결에 떠밀려 갈 것인가, 아니면 적극 성찰하고 동참할 것인가. 19 법무사 2018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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